▲「의사 안중근」하면 우리는 즉시 군국주의 일제의 야심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상기하고 「하르빈」역두의 총성을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여순」감옥에서 만국의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은 그의 동양 평화론과 군 법정에서그가 열거한 이등박문의 열다섯 가지 죄상들을 곧잘 연상한다. 그러나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의사 안중근이 수행한 사도적 업적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척 드물 것이다. ▲안 의사는 나이 17∼8세 때 우연한 기회로 佛人 홍석구 신부를 만나 교리를 배우고 많은 토론을 벌인 끝에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진리를 깨달은 안 의사는 그 후 홍 신부와 함께 곳곳을 다니며 전교에 나섰고 군중들 앞에서도 설교를 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영혼의 불멸, 천주의 존재, 공죄에 대한 천주의 공의하심, 강생과 교회 자립, 수난과 부활을 차례로 설명한 후『원컨대 우리 대한의 모든 동포와 형제 자매들이여… 천주님의 아들로서 현세를 도덕의 시대로 바로잡고… 천국에서 영복을 누리자』고 호소하여 많은 이를 입교시켰다. ▲의기 충천했던 안 의사는 약한 백성의 억울한 사정이나 교회에 대한 관의 행패로 송사가 벌어지면 언제나 총대로 뽑혀 서울로 올라가서 사건을 해결했다. 법정에서 그는『어진 임금과 훌륭한 재상은 백성을 알기를 하늘처럼 하였고 어리석은 임금과 못된 벼슬아치는 백성을 알기를 밥처럼 하였다』면서 부패한 관리를 꾸짖었다. 성직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의 직선적인 의기는 조금도 굽혀지지 않아 당시의 민 주교에 대한 격한 감정을 가진 일이 있었고 홍 신부와도 크게 다툰 일이 있었다. ▲그는 홍 신부와 서양의 박학한 수사들을 초빙, 대학교를 설립하여 전교에 도움을 주려는 계획을 갖고 민 주교를 만났으나 민 주교의 거절로 계획이 좌절되자『敎의 진리는 믿을지언정 외국인의 심정은 믿을 것이 못 된다』고 분개했었다. 그 후 그는 홍 신부가 신자들을 억누르는 폐단을 막기 위해 신자들과 상의하여 이 문제를 민 주교에게 청원하고 안 되면「로마」로까지 품하기로 의견을 모았으나 사전에 이 정보를 들은 홍 신부로부터 무수히 매를 맞았었다. 그는 홍 신부의 매를 참았고 얼마 후 홍 신부의 사과로 옛 정을 회복했다. 사실 안 의사는 32세의 젊음을 형장의 이슬이 될 때까지 敎도 버리지 않았고 성직자도 버리지않 았다. 의병 중장으로 동지 두 사람과 12일 동안 단 두 끼만 먹고 추위에 떨며 산 속을 헤매면서도 동지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대세를 주었었다. 공의회로 야기된 교회 구성원 간의 발전적 혼란과 잡음 때문에 성직자와 교회를 한꺼번에 등지는 냉담자들을 볼 때 더욱 기리고 싶은 토마스 안중근 의사, 오늘은 그의 육십두 번째 기일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