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누구나가 자기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고 또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다한다는 의미의 책임이란 그 일에 대한 의무 내지 사명을 말하는 것이고 져야 한다는 의미의 책임이란 그 잘못된 결과에 대한 보채을 뜻하는 것이다. 책임을 완수 또는 이행하는 것은 전자를 말함이요 어떤 허물로 인하여 벌을 받거나 손해배상을 한다는 것은 후자를 말하는 것이다.
지도자는 다해야 할 책임이 많고 져야 할 책임이 무겁기 때문에 특히 여기서「責」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지도자와 보통사람과의 차이점은 어느 의미에서 맡고 있는 책임의 다소와 지고 있는 책임의 경중에 달려 있는 것이고 또 지도자의 위계도 그 책임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로부터의 책임관에 대한 교훈을 살펴본다면 먼저 공자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강조했다.「君子求諸己小人求諸人」이라 하여 지도자 될 만한 군자는 허물의 책임을 자기에게로 돌리고 그렇지 못한 소인은 그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로 돌린다고 한탄하면서 다시「窮自厚而薄責於人」을 가르쳤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한 문책은 무겁게 하고 남에 대한 문책은 가볍게 하라는 뜻이다. 또 성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교훈에도 남의 눈의 티를 꺼내려 하지 말고 먼저 자기 눈의 들보를 꺼내야 한다는 취지의 말씀을 찾아볼 수 있다. 요는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 사회는 과연 어떤가. 외국 사람들이 우리 한국인을 비판하는 말 가운데 책임의식이 박약하다고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더 강하게 표현한다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거나 또는 전연 느끼지도 않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성에 대한 이와 같은 평가는 가혹한 것이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는 하나 그러나 우리 자신을 냉철히 반성해 볼 때 스스로 어느 정도 긍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속담에「잘 되면 제 덕이요,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듯이 남을 탓하기가 일쑤가 아닌가. 이것이 책임의 회피이고 책임 전가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고백의 기도를 바칠 때에「내 탓이요 내 탓이요」외우면서 곧잘 가슴을 치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딘가「네 탓이요 네 탓이요」하는 반대말을 하고 있지나 않는가. 더욱이 지도자는 자기의 맡은바 책임의 적극적 수행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자기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나아가서는 자기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는 따위는 지도자로서는 가장 비겁한 결격조건이 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책임을 무서워하여 이를 회피할 생각보다는 도리어 적극적으로 책임과 부딪쳐 그와 대결하려는 기개가 있어야 하겠고 또 자기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하 사람의 잘못한 책임까지도 지도자 자신이 맡아서 지는 長者之風이 있어야 하겠다. 지도자는 항상 피지도자를 지휘 감독하는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또 그들을 완전보호할 의무도 져야 한다. 윗사람이 재하자를 보장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누구를 위해 또 누구를 믿고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할 것인가. 예로부터「責在元帥」란 말이 있다. 이는 어느 집단이든 그 모든 책임이 총지휘자인 원수에게 있다는 대범한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볼 때 어느 사회이든 모든 책임은 責在下位 」의 분산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최고위자가 책임을 지는 것보다 최하위자에게로 책임이 집중 전가되는 경우를 허다히 볼 수 있다. 피래미만 걸리고 고래는 피한다는 풍자가 나돌고 있는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다. 한마디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기 책임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들의 책임까지도 도맡아서 질 줄 아는 지도자가 아쉽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