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다운 신문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느 익살스런 선배 하나는 요새 신문을 지적하여 동아판 조선판이지 어디 그것이 옹근 의미의 신문이냐고 쏘아붙이는 정도다.
오늘의 신문이 누려야 할 자유의 영역이 타율에 의하여 비좁아지지 않을 수 없는 객관 정세의 이상한 기류를 두고 비꼬아 한 말인 듯하다. 좌우간 나처럼 과문한 주변을 갖고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 보면 오늘의 신문이 당하는 수난의 내력은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의 신문이란 엄밀한 의미에서 검토해야 할 점이 하나 둘이 아닌 성싶다. 가령 요며칠 전에 왕년에 日人 배우 李香蘭에 관한 보도 기사만 해도 그렇다. 주지하는 바 李香蘭은 1930년 때부터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굉장히 설치던 일본 배우인데 그가 우리땅을 찾아오자 마치 모든 신문들이 다투어 잃었던 연인이라도 되찾은 듯이 법석을 떠는 꼬락서니라니 참으로 보기가 민망했다.
심지어 어느 신문은「해방 전 올드팬의 연인 李香蘭 씨 내한」하고 커다란 활자를 박아 보도하고 있었다. 생각컨대 이향란이 한참 활약하던 시기란 일제가 대륙 침략에 광분하던 때다. 이때 일제는 군사적 우위의 위력으로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만주와 중원을 석권할 수 있었으나 한국 사람과 중국 사람은 완전히 지배할 수가 없게 되자 소위 동화정책이라는 이름하에 각종의 문화 공작을 전개하였었다. 이 문화 공작의 일원으로 이향란은 우선 리향란이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륙의 점령지대를 누비며 혹은 일군의 잔악한 살육전을 독려하고 흙은 점령지대의 난민을 회유하였다. 이향란의 이와 같은 활동이 약간의 실효를 거두게 되자 일제는 그를 일본과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중원까지를 누비는 미모의 여인상으로 조작하고는 그 조작된 연인이 풍기는 독화 속에 모든 점령지대의 민족적 저항과 고난의 현실을 해소해 갔던 것이다. 그가「시나노 요루」(중국의 밤)라는 영화의 주역을 맡았을 때 일제에 의하여 박해 받는 중국은 오히려 화려한 것으로 도호되었으며 또 그가「너와 나」라는 영화에 출연하자 소위「내선일체」는 더욱 그 강제의 쇠사슬이 죄어져 갔다. 우리는 그 당시 이 교묘히 조작된 미모의 상징에 장애를 받아 이향란이 있는 곳에 조국에 우선하는「조국」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 바도 없지 않았고 그의 관능적인 미의 과시, 전략적 선전 국책에 의한 신비감의 창출에 영향을 받아 우리들의 전통적인 여인상과 그 미의식을 빼앗겼었다. 민족 해방이 되자 우리는 우선 이러한 일제의 조작에 의해 형성된 전도된 미의식을 파괴하는 제기로 삼았다. 이향란이라는 미적 허구를 무너뜨리고 대신 우리의 아름다움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 데 꾸준히 노력해온 터다.
그런데 오늘의 글 쓰는 친구들은 이 귀중한 역사적 체험도 잊었는가. 낡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미모와 인기에 대하여 비판하는 한 줄의 글도 첨언함이 없이 그를 맞는 기사를 쓰고 그것도 모자라서「해방 전 올드팬의 연인」이라고 하여 일제가 강요한 범죄적 미학을 지금에 와서 두둔하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가 없는가?
「언론의 자유」가 어떻다고 나불대기 전에 적어도 한 줄의 글을 쓰는 자들은 먼저 양식을 챙겨야 할 것 같다. 그래야만 언론의 어느 부분이 썩었는지를 알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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