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는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야 한다. 교만이 칠죄의 수위를 차지할 만한 큰 죄이라면 겸손은 신망애 삼덕과 사추덕의 전제적 요소가 될 만한 큰 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원조 아담의 교만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신 예수의 겸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구원이 왔다는 사실은 겸손과 교만의 본질적 의의를 가장 극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그러나 좀더 겸손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겸손은 첫째로 교만과 正反對의 개념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 존대와 타자 경시의 양면을 가진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느님의 말씀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의 뜻을 멸시하고 깔아 없앤다. 그러나 겸손한 자는 창조주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제일 의로 삼는다. 그리고 겸손한 자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할 줄 안다. 교만한 자가 항상 자기가 제일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데 반하여 겸손한 자는 항상 자기는 부족하다는 의구에 잠기고 있다. 교만은 진실 이상의 허구를 과시하려는 욕망에 불타고 있지만 겸손은 있는 그대로를 꾸밈없이 드러내려는 경건성이 있다. 교만한 자에게는 속이 꽉 차 있기 때문에 남의 좋은 말이 들어갈 여지가 없으나 겸손한 자에게는 마음이 환히 비어 있기 때문에 다른이의 충고를 받아들일 공백이 많다.
교만한 자는 모든 사람의 원한을 사기에 알맞을 것이요 겸손한 사람은 어떤 이로부터도 흠모의 정을 일으키게 한다. 궁극적으로 말해서 교만한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고 겸손한 자만이 구원을 얻기에 충족하지 않을까? 루까복음서(18·9~14)에서 명백히 지적된 바와 같이 오만불손한 바리사이의 기도에는 거들떠보시지 않고 오직 지극히 겸손한 세리의 애원에 대해서는 의인으로 인정하신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또 동양의 지성선사로 일컫는 공자는 교만에 대해서 말하기를『비록 주공과 같은 훌륭한 재능을 지녔다 해도 만약에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나머지는 보잘것 없다』고 단죄하였으며 또 그의 제자 공공은 그 스승을 찬송하여 이르기를『孔夫子는 溫, 良, 恭, 儉, 讓의 五德을 갖추신 분이라』고 하며 공손과 겸양이 두 가지를 이중으로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겸손의 덕과 교만의 죄에 대해서 동서의 사상이 와전히 일치된 것을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겸손을 실천함에 있어서 또 하나의 경계를 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겸손과 비굴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겸손이 미덕이란 관념에 구애된 나머지 자기를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덮어놓고 平身低頭하여 남의 호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바른 의미의 겸손이 아님은 물론 그것은 오히려 비굴이나 아첨에 해당하는 행동일 것이다. 過恭이 非禮라는 말은 이런 종류의 사이비 겸손을 경고하는 것이다.
진정한 겸손은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이나 덕이나 용기 등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떳떳하게 보탬이 없고 주림도 없이 평평탕탕하게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또 겸손은 하느님에 대한 겸손과 사람에 대한 겸손으로 구분하는 수도 있다. 요는 겸손은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봉사에로의 길잡이 덕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분야에서 가장 많은 봉사의 책임을 지닌 지도자에게는 특별히「겸」의 덕을 쌓아야 되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지도자가 만약에 교만한 자세를 가졌을 때에 그 수하 사람들을 그렇지 않아도 손윗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항시 긴장과 소외감에 쌓여 있을 터에 황차 지도자가 위압적인 고자세로 임한다면 그들은 그 지도자의 품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오가는 마음의 정이 통하지 못하는 일방통행적 압제만이 있을 뿐이고 포근하고 넉넉한 인격대인격의 지도관계는 이루어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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