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바티깐」공의회는 평신도의 위치와 사명과 의무를 크게 부각시켰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제들의 문제는 이번 공의회 이후로 점점 더 복잡하게 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난 5년 간 성직을 떠난 사제는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제들이 환속을 할는지는 아무도 추정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하여튼 사제들이 자기가 받은 성소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고 또 사제로서의 생활을 보람 있게 영위하고 있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작년 세계 주교 시노드는 사제 직분을의제로 토의한 바 있다. 그러나 아직도 사제에 대한 문제들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아마도 이 문제들은 세말 때까지 해결하지 못할 성질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한국에 있어서의 사제의 위치는 좀 특수한 면이 있다. 아마 이것이 우리나라의 환속하는 사제가 다른 나라들보다 적은 원인이 될는지도 모른다. 한국 사제의 특수성 몇 가지를 들어보면 첫째로 그들의 생활이 중류 이상이라고 볼 수 있으며 둘째로 교회 내에서 그들의 권위가 절대적이고 셋째로 따라서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고 넷째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것 등이다. 그래서 사제들이 지니는 공통적인 성격과 심리상태도 특수하게 형성되기도 한다. 지나친 권위주의라든가 안하무인의 성격이라든가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것 등의 현상을 성직자들 중에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사제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위 성직자들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모든 것이 성직자들에게 매여 있다. 무엇을 하든지 성직자들이 앞장서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고 성직자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어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성직자와 교회가 동일시 되고 있다. 그래서 한국 교회 쇄신은 성직자들의 쇄신에 매여 있고 우리 교회가 어느 정도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성직자들이 어느 정도 의롭게 있고 우리 교회가 얼마나 평화로운 교회인가 또 진리의 교회이며 봉사적인 교회인가는 성직자들이 서로 얼마나 화목하며 진실하고 또 봉사적이냐 하는 데 매여 있는 것이다. 성직자들이 서로 화목하지 못하면 신자들이 분열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그뿐 아니라 성직자들이 서로 협조하지 않을 땐 신자들도 자연적으로 서로 협조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서호 협조하려고 하여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는가?
참으로 우리 교회 안에 성직자의 위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모든 성직자들은 (일반 성직자나 고위 성직자나 할 것 없이) 진실로 각성하지 않으면안 될 줄 믿는다.
그러면 한국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다음 몇 가지를 요구하고 싶다.
첫째로 공부와 연구를 계속해 주기 바란다. 근래에 와서 교회 내에 많은 세미나와 연수회들이 개최된다. 거기에 평신도들과 수녀들은 많이 참석하는데 성직자들은 비례적으로 적게 참석한다. 물론 그들은 다 알고 다 배웠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성무에 바빠서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으레 연구회에 참석하지 않는 성직자들이 상당히 많다. 일부층에서는 이러한 사제를 벌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시대는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발전하는 현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 성직자는 낙후되고 만다. 사실 평신자들과 수녀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성직자들보다 신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출판물이 잘 보급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우리 신자들이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실상은 성직자들이 독서를 하지않기 때문에 교회 서적이 보급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성직자 자신이 독서하고 또 독서한 서적을 신자들에게 권고하면 얼마나 많은 서적들이 보급될 것인지 능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로 성직자들은 말하기 보다 남의 말을 듣는 데 열중해 주기 바란다. 성직자는 직책상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올바로 가르치려면 남의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외국 속담에 지도자는 입보다 귀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듣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원칙론만 내세우고 그 원칙이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응되는지는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이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을 구분해서 생활하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것도 성직자들이 잘못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권위주의를 버리라는 것이다. 권위는 봉사라고 예수께서 가르치셨다. 그런데도 성직자들은 귄위를 착각하고 있다. 이것이 성격상으로 가장 많이 표현되는 것은 고집이다. 물론 성직자로서 고집이 없어서야 되겠는가마는 그러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기를 바라는 고집을 버려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넷째로 성직자들은 독신으로 생활하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여러 가지 폐습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물론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다. 그러나 성직자들은 이 폐습을 인식하면서 고쳐 나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중의 한 가지로서 자기 자랑만을 늘어놓는 수도 있고 물질에 대해 과분한 욕심을 가질 수도 있다. 성직자가 자신을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자기가 받은 사명을 완수했다고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고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섯째로 성직자들은 너무 감상적이다.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쉽게 분노를 터뜨린다. 독재가와 독선가들이 비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비판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수양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는 지금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할 때가 왔다. 이 때일수록 성직자들의 일치 단결과 상호 협조와 이해가 필요하며 공동전선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성직자들의 반성과 새로운 각성을 희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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