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없는 이곳, 동생이라고 찾아온 형님과 말한마디 변변히 못하고 헤어져야만 하는 나에게 형은 한번 실수는 병가상사라 하시며 나오면 꼭 착한 동생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날의 과오를 후회해 보았지만 형을 따라갈수 없는 나, 대추나무 언덕에서 울부짖는 나를 보시고 가슴 아파하시며 돌아가시던 형님 그분 역시 부모를 잘못 만나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형이 왔다간 한달후 이번엔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아버님 손을 잡고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마를새 없는 그때의 나에게는 어머님과 연관성 있는 사람과 만나면 저절로 울게 마련이었습니다.
역경에 처해있는 나를 보시고 눈물만 흘리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다녀가신 한달후 나는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8개월만에 다시 새빛을 보게 된 나는 부산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자유를 찾은 기쁨과 함께 앞으로 살아갈 일이 아득하기만 해지는 마음으로 부산땅에 발을 딛고 아버님이 계시는 시청앞 대한생명 보험회사로 갔습니다.
수위실에서 성함을 대고 다시 만난 아버지 아무말 없이 나를 목욕탕으로 데려가 목욕을 시켜주시고 옷을 한벌 사주며 아버지는 저녁밥을 함께 나누면 서어떻게 할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학교에 넣어 주신다고 했지만 나는 취직을 하겠다고 했더니 아는 이발관이 있으니 거기 가서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네」하고 대답은 하면서도 내키지 않는 나의 마음, 어린 내게는 소년원서 들은 일확천금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그 유혹이 나의 20살까지의 운명을 결정지워 놓을 줄이야…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버님 따라 세째 누나집으로 갔습니다. 위로 두 누나는 모두 시집가고 세째누나가 부산으로 시집와 사는데 막내동생 경순이가 그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나의 두 친동생 영순이와 정순이의 행방을 물으니 아무말 못하시는 아버님을 더 괴롭혀 주지 못해 묵묵히 걷는 내 가슴은 또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지만 침묵속에 세째누나 집으로 오게 됐습니다.
반가와하는 누나 더구나「오빠」하고 부르며 내 가슴으로 파고들며 기뻐하는 경순이, 불행속에서 자라는 어린동생이 가엾고 가련했습니다. 한창 부모의 귀여움속에서 자랄 나이에 인생의 비극을 뼈저리게 겪어야만 하는 불쌍한 동생들 이것은 진정 누구의 잘못입니까? 울면서 났다가 슬픔속에 자라나 눈물속에 방황해야 하는 우리 5남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우린 슬픔속에 살아야 합니까?
나는 그 이튿날부터 놀았습니다. 아버지가 나가시면서 주고간 5백원 돈으로 나는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먹고 싶다는건 다 사주었습니다.
「어머니의 힘」이것은 진정 무서운 힘입니다. 한 자식이 잘되고 못되는 것은 오직 어머니의 힘에 달려있다는 것을 당시 나는 절실히 느꼈습니다. 생각하면 진정 원망스러운 엄마 그래도 그 엄마가 살아만 주셨다면…
동생을 데리고 당감동 화장터로 가보았습니다. 그날도 많은사람들이 화장막을 두드리며 우는 광경이 보였습니다. 벌써 10년이 넘는 세월, 마지막 어머님의 그 피맺힌 말씀, 착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시던 눈물 젖은 그 목소리를 생각하는 내 눈엔 이슬만 맺히고 지금은 불효자식이 된 나를 꾸중도 못하시고 타계의 사람이 된 어머니, 어디든가서 어머님의 영혼을 찾기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가고싶은 내 마음….
그러나 지금나는 많은 죄를 진 죄인, 설사 어머님을 만난다 해도 어떻게 만날수 있으리…
당감동의 굴뚝연기를 보며 역시 무엇을느꼈는지 우는 동생을 데리고 힘없이 돌아온 누나집, 그러나 며칠후 또 다시 나는 그 집을 나왔습니다. 소년원에 있을때 찾아오라던 사람, 그 장소로 찾아가니 반가와하면서 하루에 만원씩 충분히 벌수 있다고 말하며 그날부터 여관생활을 하도록 해줬습니다.
기어코 범죄의 소굴에 들어선 나, 그 사람이 범죄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간이 조마조마 했지만 그가 하는 대로 따라했습니다. 여행가는 사람이 가방을 잠시놓을때 그 사람 눈을 피해 살짝 가지고 늠름하게 그들 앞을 통과, 길건너 편에서 택시를 잡아 마치 자기 물건처럼 갖게되는 범죄, 들치기라는 것, 결국 일주일을 쫒아다니던 끝에 나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나의 첫 범행장소는 광복동 야시장, 처음엔 손이떨려 눈을 딱 감고 했었지만 그럭저럭 나도 들치기범의 리스트에 얹힌 일꾼이 되었습니다. 한번두번 나는 두려움 없이 그 사람 하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이 해냈고 돈을 갖게되면 옛날 우리 가정이 돈에 멍이 든 것을 생각하며 물쓰듯 썼습니다.
기지쓰봉에 구두, 깨끗한 옷차림, 누가보나 부자집의 막내둥이같았습니다.「범죄」를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하루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고. 무슨말이냐 하면 고문을 당해도 한사건 이 외에는 입밖에 내서는 안되고 공범이 있으면 불리하니 단독범이라 할 것, 즉 그들은 법을 아주 무서워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내게는 겁이 없었습니다. 닥치는대로 무조건 주워오고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안 가질뿐 아니라 내 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고향의 동생들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내 행동이 잘못이라는 것을 추호도 생각할수 없는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물건을 훔쳐오면 그가 갖다 팔아서 내 주머니에 두둑하게 채워주니 나는 그 물건이 얼마짜린지도 모르고 그저 그 돈으로 먹고싶은 것을 사서 먹고 갖고싶은 것을 사서 마음껏 가지고 놀며 심지어는 15세의 소년으로 사창가의 창녀와도 자곤 했습니다.
성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나이많은 그 누나가 나를 동생처럼 귀엽게 해주었기에 S누나로 삼아 지냈습니다.
부산의 밤거리 누나는 비록 그 밤거리의 꽃이 되지만 잠잘 때는 내 옆에서 항상 나를 안고 자곤 했을뿐 정을 모르고 커온 나는 그 누나가 무척 좋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양과점을 기웃거려 맛있는 과자랑 선물을 사서 누나랑 나눠먹는 재미, 비록 사는 방법은 틀렸지만 내 마음 밑바닥에는 인정과 사랑이 깃들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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