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한 우리의 옛 시조가 있다. 『성낸 가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청파(靑波)에 조히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한 염려 때문이었다.
과연 어지러운 세상을 만날때마다 뜻있는 사람들은 흔히 생각한다. 공연히 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초연히 홀로 있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우선은 마음 편한 생각이 아닐수 없다.
아직까지 그래도 순진하고 순수했던 문학인 사회에서마저 근래에는 선거바람이 과열되고 있다. 문학적 이념도 같고 자라온 연고관계도 같은 사람들끼리 문학인 단체의 감투자리를 에워싸고 적개심을 불태우고 있다. 문학인들이 좋은 소설을쓰고 시를 쓰고 평론을 써야지, 행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좋다는 것인지 의아해진다. 이럴 때면 저명한 가톨릭문사였던 고마해송(故馬海松) 선생이 생각난다. 그는 문인협회에도 들지 않았고 집에 들어앉아 아름다운 글들을 써내었다. 원고료는 항상 가장 높은 값으로 받았고, 남방 차림에「백양」담배를 즐겨 피웠다. 만년에는 혜화동 성당의 새벽미사에 참예하고 나와 마당가 벤취에 호젓이 앉아보는 것이 그의 낙이었다.
직접 접해본 일도 없지만「아름다운 새벽」이라는 그의 자서전적 소설에서부터 친근해지기 시작하여 그의 세상살이 거동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존경을 표해왔다. 그분을 흉내내려던 것은 아니지만 나도 문단생활을 해오면서 문인협회에 들지 않았다. 얼마전에 문인협회 전국대회가 있었고 자리를 다투는 선거 때문에 모든 문학인들이 그곳에 몰려가 하루를 꼬박 소비했다. 홀로 남은 나는 장안을 이리저리 거닐어도 만날수 있는 벗이 없었다.
나는 고독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추한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점은 어디까지나 떳떳하다고 생각되었다. 다만 그 선거를 하러가던 한 친한 벗이 내게 들려준 말이 생각났다.『우리가 초연하려한다고 초연해질수 있는가. 우리가 이 풍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떳떳한 일일까?』이 점이 어려운 문제가 되어 떠올랐다. 똑같이 추한 꼴이되기 싫은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홀로 피해서 앉아있으면 그만인가 개인주의적 도피로 끝나는 것이야 말로 소녀적 감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혼돈의 구성인자로 똑같이 침몰해서는 안되지만 또 다른 무엇인가를 하고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책임감이 생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초연하려는 자세는 마찬가지로 이 결론에 부딪치지 않을까 생각된다. 또 다른 무엇 즉 또 다른 진실의 구체적인 방도는 개척되고 추진되어야 할 뿐 아니라 이미 그 일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중이 아닌 사람은 떳떳한 입장이 못될것 같다. 그는 바로오만한 사람이다. 「스스로 고립하려는 태도, 스스로 만족하려는 태도」는 이제 형제들을 그만 사랑하겠다는, 하느님도 그만 사랑하겠다는 태도라고 볼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괴로움이 끝나고 희망이 끝나고 구원도 끝난다.
이렇게되면 소극적인 초연에 따르는 책임의 문제를 넘어서서 사랑을 통한 자기구원의 단절이라는 불행에 떨어지는 결과가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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