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신이 처음으로 강림하셨을 때 그 자리에 있던 12사도들은 즉시 모든 사람들에게 강론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받았으며, 그날 베드로의 강론을 듣고 그 자리에서 영세 입교환 신자가 3천 명이나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성신이 강림하면서 사도들에게 부여한 첫 특은이 바로 강론 능력이었다는 사실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제1차적으로 갖춰야 할 요건이 무엇인가를 명백히 일러 준다. ▲제2차 「바티깐」공의회가 반포한「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도 사제를 하느님의 말씀의 교역자로 규정하고『하느님의 백성은 우선 생활한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모이게 되며 이 말씀을 사제들의 입에서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교시하고 있다. 이 같은 가르침은 하느님의 말씀의 교역자가「하느님의 대리자라기보다 대변자」라는 주장을 이론의 여지없이 뒷받침한다. 이 주장은 교역자가 하느님의 대리 역할을 하는 순간도 있다 하는 사실을 전혀 배제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하느님의 대변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대변해야 함은 하나의 지상명령이 아닐 수 없다.「바티깐」공의회는 대변자들이 대변할 내용, 즉『강론 내용은 성경과 전례의 샘에서 취해야 한다』고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강조하고 있다. 드문 일이긴 하나 이 같은 가르침이 아예 외면 당하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강론을 환경에 적응시켜 보려는 좋은 뜻에서 출발한 것이겠지만, 10대들이 즐겨 쓰는 은어를 성경 구절처럼 나열하고 욕지거리와 돈타령으로 일관하거나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도시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충복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말씀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개심과 성성에로 불러들이는 영양과 활력이 생동해야 한다. 이러한 영양과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충복으로서의 성의가 문제일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강론, 마지못해 하는 강론, 내용 없는 강론은 모두가 강론자의 성의 부족이 그 근본 원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성의가 있다고 해도 강론은 어려운 모양이다. 설교 잘 한다는 목사도 설교 도중 청중이 조는 것을 보고『불이야!』하며 고함을 질러야 했고, 어리둥절한 청중을 향해『지옥에 불이 났소』하고 외쳤다는 일화가 있으니 말이다. 성신강림절을 맞아 신앙은 강론을 들음으로써 생긴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과 사도의 가장 중요한 의무를 새삼 되새겨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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