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에 발표되었고 21일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된「주교 임명에 관한 새 규정」은 가톨릭교회를 위해서는 획기적인 규정이 아닐 수 없다.
제2차「바티깐」공의회는『주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천상천하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주께로부터 만민을 가르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전할 사명을 받은 것이다』(교회헌장 24조)라고 천명합으로써 주교직의 고귀성과 사명을 명백하게 하였다. 사실 주교는 교회의 일치와 사목의 볼 수 있는 원천이며 기반이다. 교회는 주교를 중심으로 하나로 모인 단체이며 교회사목의 원천은 바로 주교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주교의 위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를 존속케 하는 사명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교와 분리되거나 주교의 사목원을 배격하고서는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각 주교는 자기에게 맡겨진 지역을 위해서만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일치와 사목의 볼 수 있는 기반인 그는 교황과 일치하고 다른 주교들과 일치하여 주교단을 형성함으로써 그 지역의 볼 수 있는 일치와 사목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제2차「바티깐」공의회 문헌에서 수차 강조된 사실이다.
교회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는 주교직에 주교를 임명하는 것은 교회의 중대한 과업이 아닐 수 없으며 한 지방교회에 새 주교가 임명되는 것은 그 지방의 큰 경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교를 임명하는 최종 권한은 교황 자신이 갖고 있다. 지방교회에서 주교 후보를 3명 선정하여 교황청으로 상신하면 교황은 그 중 1명을 주교로 임명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 교회에서 실시되고 있는 주교 후보 선정 방법은 모든 것이 비밀리에 추진되기 때문에 일반 신자들은 잘 알 수 없으나 주교회의에서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주교회의에서 주교 후보가 선정되면 주한 교황 대사는 주교들과 몇몇 신부들에게 조사서를 보내어 후보자에 대한 신분과 사상과 덕행을 조사, 그 결과를 교황청으로 보내게 되어 있다.
이번 새 규정이 전체 교회에 시달한 것은 주교회의 비밀회의에서만 선정되던 주교 후보를 더 광범한 여론 참작과 심지어는 신부들과 평신도까지 참석할 수 있는 비밀투표에까지 부쳐서 선정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교직을 위한 후보자를 선출하는 데 지나지 않고 최후 결정권은 교황에게 있는 것이디다. 그런데 최후 결정권이 교황에게 있다 하더라도 이번에 발표된 새 규정은 교회 민주화를 위한 진일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주교회의에 위임되었던 후보 선정이었기 때문에 주교 임명을위한 전체 교회의 참여는 전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심히 염려하는 바는 이 새 규정이 한국 교회에서는 과연 어떻게 실행될 것이며 또 실행될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하는 문제이다. 아마도 상당한 時日이 지나서야 비로소 실행될 것이라 생각되며 급히 서둘 일이 아니라 인내 속에서 실행할 날이 오기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주교 임명에 관한 새 규정」을 구제척으로 실천하기 위해서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한 번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현 한국 교회 주교들이 참된 대화의 자세를 구축해 주어야겠다. 한국 교회에서 주교에게 비평을 가한다든지 주교의 사목과 행정 그리고 인격과 지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불경죄로 생각하여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주교가 교회의 일치와 사목의 볼 수 있는 원천이요 기초이기 때문에 주교에게 불경하는 것은 교회 자체에게 불경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주교를 비평하는 것은 교회 일치를 파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고 정당한 비평과 또 겸양하게 비평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교회 일치를 파손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일치를 구축하는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 내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주교가 교회사목의 원천인 만큼 이 모든 문제들의 궁금적인 책임과 해결책은 주교들에게 있는 것이며 또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예를 들어 교회가 쇄신해야 한다면 쇄신을 맨 먼저 해야 할 사람은 주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교의 덕망과 지식과 열의와 인적은 교회의 존재 양상을 좌우하는 원천임에는 틀림이 없는다. 한국 교회의 주교들은 새롭게 각성해야 할 것이고 진지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력해 주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신부들과 평신도들의 준비이다. 새 규정에 의하면 신부들과 평신도들이 주교 후보 선정에 참여하도록 돼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부들은 사목의 시야를 자기가 맡은 직분에만 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교구적이고 국가적인 면으로 넓혀야 할 것이고 신자들은 교회 운영과 문제들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새 규정은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의 위치를 최고도로 높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지위에 맞는 신앙생활을 평상시에 영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를 실행할 계기는 전혀 오지 않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셋째로는 새 규정을 실천하기 위한 한국 교회의 규약을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한다. 교황청의 새 규정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지방교회에서 모색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 규약이 작성되지 않으면 새 규정은 한국 교회를 위해서는「그림의 책」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주교 임명에 관한 새 규정」이 한국 교회 쇄신에 박차를 가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제도는 구조와 양상과 사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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