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이 무엇인지를 조금 느끼고 살게된 나의 생활, 그런 나의 생활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다시금 파출소 감시망에 걸려든 나, 경찰서를 거쳐 소년원 가위탑 2번째의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역시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번잡한 거리를 활보하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이곳, 나는 한쪽 구석에서 아무말 없이 지냈습니다. 잡혀가면 면회도 오고 빼내어 준다던 사람은 소식조차 없는 나날,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태산같이 믿고 기다렸지만 내가 소년원에 들어가기까지도 그들의 면회는 없었습니다.
보호자가 없는 관계로 또 위탁 처분, 그곳에는 여러가지 기술 배우는 곳이 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노래를 잘 불렀던 나는 밴드부에 들어가 크라리넷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어린나이에 밉지않게 생긴 나를 마스코트마냥 잘 봐주었습니다.
그곳 생활 6개월, 걱정없이 나가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계획도 세워보지 못한채 나오게 되었습니다.
문 앞에 나오니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처음보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면서 전번에 나와 함께 있던 사람한테 소개를 한다고 했습니다.
갈데없는 나, 어쩔수 없이 또 그들을 쫓아갔습니다. 목욕을 하고 그들의 집에 도착하니 그곳엔 나보다 큰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이름은 영호, 그리고 아저씨 이름은 김성대, 저녁상과 함께 통닭과 불고기가 그득히 담아 나오고 보신을 하라면서 내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그들을 따라 그저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 후 나는 많은 사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없이 착한사람들 비록 어쩔수 없이 하는 짓이지만 인간의 본능인 善을 잊어버리지 않고 길가다가 거지를 보면 동정하는 착한 마음, 또 자신을 다시 찾으려 애쓰는 심정 그때 어린 나였지만 그들이 하는 말은, 『범죄는 마이나스』란 용어. 이번에 나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나의 범죄행위, 나와 영호, 그리고 아저씨, 이렇게 셋이 나가면 그들은 어린 나의 공명심을 이용해서 나를 자꾸 칭찬해주고 그러면 난 또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고 맙니다.
당시 무질서한 나의 머리는 살아야 한다는 각오와 긍지가 없었습니다. 될대로 되라는 마음가짐과 내일을 모르는 생활이 연속되어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내가 3번째 잡히던 바로 그 전날 우리 일행이 교통부에서 범일동으로 내려오는데『여보세요』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3년만에 만나는 영순이, 많이 컸고 몰라보리만큼 성장한 나의 여동생 일행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못하고 다음날 오후 1시(삼성극장)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마음이 자꾸만 이상해짐과 동시 까맣게 잊어버렸던 어린동생을 생각이 무슨 영화장면처럼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부터 일(범죄)하러 나왔습니다. 그날따라 하나도 걸리지 않고 동생을 만난다는 설레임으로 이거리 저거리 돌아다니며 국제시장 안에서 또 다시 현행범으로 경찰에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내 나이 16살, 그러나 13살이라고 속인 탓으로 바로 또 소년원 가위탑으로 갔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누구에게도 전할수 없는 자신의 옹졸함, 그렇게도 보고싶던 동생을 만나는 기쁨도 가져보지 못한채 영어의 몸이 된 나를 영순인 얼마나 기다릴까?
울고 울었지만 어떻게 할수 없는 현실. 모든걸 체념하고 언젠가는 만날수 있을 것을 기원하며 마음을 달래는 도리밖에 없었습니다. 소년원생 나는 3범인 관계로 김해 소년원으로 이송되고 공범들에게는 아무소식도 없었습니다.
모든 마음을 잃어버린 나, 성장해 가면서 나의생활에 한번도 의문을 품어보지 못한 내가 이제야 비로소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고생하는지? 그러나 해답을 얻기는 어려웠습니다. 괴로움이 쏟아질때 아름다운 음율속에 몸을 던져넣으며 또 열심히 내게 주어진 날들을 보내며 출옥하면 동생들을 찾겠다는 생각만 거듭했습니다.
잘못된 인생관, 내 또래 아이들과 공을 차고 또 한곳에서 이야기도 하곤 했지만 색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1년2개월, 정말 오랜날들이었습니다. 막상 나오니 갈 데가 없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걸어보았습니다. 김해 대지면에서 구포다리까지 그저 멍하니 걸어나왔습니다.
어떻게 할것인가? 동생들은 어디있는지? 만날때 주소나 알아놓을걸? 하는 후회와 함께 오늘밤 당장 시급한 잠자리 걱정, 갖가지 고뇌와 번민속에 범일동까지 오게되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범천동 중턱의 문자누나 집으로 갔습니다. 아버지의 소식을 묻고 동생들 거처를 물었지만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습니다.
더이상 있어봐야 폐만 끼칠것 같아 힘없이 걸어나왔습니다.「어딜가느냐」는 말한마디 물어도 볼만한데…아무말 없는 그들을 등지고 나온 나의 머리속에 역시 난 불청객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비참」이란 두글자가 맴을 돌았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걷는 내 앞에 우뚝 서는 한 아주머니. 고향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소식을 묻는 그분, 그저 난 울기만 했습니다. 어머니! 고향서도 인심 안 잃고 착하고 인정있는 분이라 인사듣던 어머니. 그런분이 왜 돌아가셨는지…
남들은 모두 어머니날에 빨간 카네이숀을 달아드리지만 난 남 몰래 흰 카네이숀을 주머니에 넣은채 당감동 화장막으로 갔습니다.
한참 울고 또 울음을 삼킨채 이 거리 저 거리 돌아도 다녔지만 행인들의 차가운 눈길만이 나를 비웃고 있을뿐 어김없는 밤이 나를 찾아주고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