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장 한공렬 대주교가 사순절이 밝아오는 재의수요일 아침에 61세를 일기로 선종하셨다. 금년1월말 심장병의 증세로 서울 성모병원에 입원 몇 차례의 위기를 넘기고 호전의 소식에 그의 완쾌를 비는 한국의 전 신자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부음에 아쉬운 마음 금치 못한다. 이는 그의 탁월한 덕망과 학덕 그리고 회갑년을 맞는 그의 노련한 사목적 경험을 이 새로운 교구인 광주대교구의 대주교로써의 생활이 바야흐로 시작되려는 해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의 운명을 애석히 여기며 추모와 애도의 정을 풀길없다.
고인의 하느님 백성의 참 봉사자로써 짧지않은 33년간의 사제생활 그 중 14년간은 사제직을 준비하는 후배양성을 위해서 그리고 12년은 사제직을 수행하는 사제들의 아버지와 형제로서 몸 바쳐온 그의 생애는 봉사적 사제직을 중심으로 점철된 영원한 사제 참목자의 생활 그것이었음을 말할수 있다.
소신학교 교장 대신학교 교수를 거쳐 대신학교 학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하면서 대부분의 사제들의 스승이자 후견인의 자리를 지켰고 드디어 일선사목자의 보호자이자 아버지로서 일관된 그의 생애는 화려하기에 앞서 고달프고 외로운 봉사자의 생애였다 하겠다.
전형적인 학자의 품모와 학식 그리고 온화한 그의 성품은 매사에 위엄과 권위를 동시에 사랑과 평화를 안고 「달릴 곳을 끝까지 달렸다」던 사도 바오로 생애 그것이였다. 복음의 일꾼으로써 몰아적 봉사에 일생을 소박하게 보내셨던 고인은 항시 입버릇처럼『내 교구 내 본당이 아니라 동남아시아에 관심을 갖고 일해야 한다』하시며 도움을 주는 자의 정신을 강조하셨다. 그러기에 도움을 청하는 일 보다 항시 도움을 주는 자의 위치에서 긍지와 포부를 신조로 자치교구 육성에 앞장서 왔고 그의 이상은 우리도 선교사를 파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특히 「바티깐」공의회 이후 교회의 봉사적 정신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기에 그는 사무실에서 직무를 하거나 사람을 기다려 만나는 일 보다는 찾아가 만나며 사무실을 떠나 흑산도 9개 공소를 다닐만큼 본당과 공소 순회들 가장 큰 즐거운 일과로 삼으셨다 한다. 그의 지성은 행동이었고 그의 정신은 봉사였다고 할수 있다. 명령이나 지시에 앞서 그 명령 이행을 자진해서 하도록 도와주는 자였고 귄위와 발언권을 갖기위해서 봉사를 실천하는 자였다. 소위「권위의 위기」를 말하여 온 현대사회와 교회안에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아들로 섬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습니다』(마르꼬10,44)하신 스승 그리스도의 정신대로 권위와 봉사를 하나로 보고 봉사를 통한 공동체의 평화와 일치를 이룩하셨다.
그의 생활은 물론 그의 사목교서 곳곳에서 발견할수 있는 가르침도『나는 여러분을 위해서 주교이며 여러분과 함께 한 크리스챤입니다』라는말씀이었다.
이제 한 대주교님은 유명을 달리하셨지만 그가 한국 가톨릭을 위하여 끼친 그의 발자취는 우리들안에 영원히 남아 지위지지 않는 것이며 봉사의 상징으로써 길이 남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봉사적 삶의 보상이 영원한 삶인 것을 그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증된 사실을 그의 장례행렬을 통해서 보았고「죽어서도 복음을 전한다」는 세론을 명심하고 싶다. 신앙을 통해서『죽음은 인생의 완성이요, 순수한 희망』이다라고 말씀하신 그가 먼저 가셨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결함할 가능성을 제공하며 그는 이미 하느님 곁에서 참생명을 얻었다는 희망을 우리에게 준다(사목헌장 18)
스승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48일간의 투병 생활로 빈틈없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셨던 그의 사순절의 행렬이 끝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에로 장엄한 또 하나의 행렬을 바라보며 다시금 천상에서의 쉼과 안식을 빌어 마지 않는다. 끝으로 그의 유언이라 할 만한 마지막 사목교서 1973년 년두 교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의 가르침이 이룩되었으면 한다.
『가족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합법적 방법 즉 자연법에 어긋나지 않는 방법으로 해나가야될 것입니다.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인하여 말 못하는 어린 생명들이 어머니 배속에서 혹은 밖에서 살해돼나갈 때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바랄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각물기주라는 정의원칙에 의하여 사회의 모든 부조리는 해소될 것입니다. 』
『참으로 평화를 원할진재 평화는 가능하다』『평화가 가능한 것이라면 이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무다』『이 의무를 수행하는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우리 이웃은 누구나 형제요 그들과 더불어 평화를 이룩하는데는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도다』『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리니 행복하여라』(마테오5ㆍ19)망자 평안함에 쉬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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