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를 분열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가정에서부터 인류 세계에 이르기까지 인간생활 제분야에서 나타나는 분열상은 전무후무하리 만큼 가공적이다. 이 점에서 분열상은 현대적 문제로 대두하였고 인류를 흥망 직전의 위기로 최촉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은 비단 오늘에 와서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분열은 신인간의 분열이다. 이 분열은 역사를 통해 인류의 온갖 불행과 비극의 화근으로서 작용하던 중 근세 이래로 분열의 원리인 물질을 고유 대상으로 한 과학과 기술의 급진적 발달은 분열을 극화시킴으로써 인류를 절망 속에 끌어넣었다.
이러한 현대적 위기에서 인류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상실된 신인일치를 회복하는 RELIGIO (그 어원인 RELIGARE는 신인관계를 재결합하는 뜻) 말하자면 종교밖에 다른 길이라곤 없다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신인관계를 올바로 회복시켜 주는 참다운 종교가 필요할 시기는 일찍 없었다고 하겠다.
오늘이야말로 종교는 예언자적인 사명과 수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다음으로 잊어서는 아니 될 또 하나의 분열이 있다. 이 분열은 신인간의 최초 분열을 선행하고 오히려 그 전제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자아의 분열, 인격의 분열이다. 이 자아의 인격적 분열이 신인일치를 분열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가정에서 사회 국가 인류세계에 이르기까지의 현대적인 제분열을 극복하고 지양하는 유일한 길은 전일적 인간의 인격적 통일(인격 완성)을 기하는 교육(EDUCATIO의 어원 EDUCARE는 창조를 통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모습을 끌어낸다. 형성한다는 뜻)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본다.
이 점에서 현대문제를 해결하고 현대 위기에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서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바로 이 교육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인류 구원을 위해서는 종교와 교육은 불가분적인 상호 보완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종교는 교육적이어야 하겠다. 교육을 떠난 것이 오늘의 종교문제이며 종교를 소외한 것이 오늘의 교육문제라 하겠다. 말하자면 오늘의 종교는 신인간의 종속적인 종적 관계만을 강조하므로 신앙과 생활을 유리시켰으며 오늘의 교육은 인격적 통일 원리인 (초월적으로는) 하느님을 (내재적으로는) 인간에게 부여된 하느님의 모습을 부인하므로 목표로 삼고 있는 인격 완성을 역행하여 인격 분렬을 결과시키고 있다.
오늘의 종교가 오늘의 교육이 무능력한데 그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량자 상호간의 일치를 상실한 데 있다고 본다. 오늘의 종교가 종적 관계를 강조하는 데서 권위주의를 내세웠고 오늘의 교육이 횡적인 사회관계를 강조하는 데서 자유분방을 결과시켰다. 종횡의 관계는 원래 상관적이다. 종이 없는데 횡이 없고, 횡이 없는데 종이 없다는 것은 종교와 교육은 상관적이라는 뜻이다. 이 양자는 규률과 자유의 상관성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서 현대를 다시 규정한다면 코뮤니온(COMMUNION 親交)이 없는 코뮤니케이션(COMMUINICATION-거래)의 시대라 할 수 있다.
현대의 제관계는 거래로서 이루어진다. 종교계(교회)나 교육계의 제분야에서도 그러하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종교의 문제나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 그 근원적 해결(대인요법)에는 부분적이 아닌 전체적인 표면적이 아닌 전체적인 표면적이 아닌 근원적인 분석과 진단이 있어야 하겠다. 오늘까지의 이 량자는 부분적이고 표면적인 해결(대인요법)에만 치중하므로 발전과 쇄신을 가져오지 못했다. 횡적 관계(교육)는 종적 관계(종교)에 의해서 해석되고 후자는 전자에 의해서 입증된다. 제2차「바티깐」공익회는 바로 이러한 현대적 문제에 대한 현대적 요구의 소산이라고 본다. 우리 교회가 문을 개방했다는 것은 종적으로 하느님을 향해서가 아니라 횡적으로 인류 사회에 대해서 개방했다는 것이다. 신인간의 분열, 인간 상호간의 분열, 자아의 인격적 분열의 근원은 결과적으로 종횡의 분열이다. 따라서 종횡일치, 종교와 교육의 일치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밖에 없다.
그리스도는 근원적으로 인류 구원을 위해서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쳤는가. 그것은 삼위일체와 사랑의 신비이다. 삼위일체인 하느님은 사랑이시라 했고 그리스도 자신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탁신, 사랑의 화신이다. 삼위일체와 사랑은 불가분적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비이며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합리적 신학이 추구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과학시대는 신비가 없는 시대이다.
「바티깐」공익회가 강조하는 교회의 현대화와 사회참여도 어디까지나 대화를 그 핵심으로 한다. 왜냐하면 분열의 시대는 대화의 단절시대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사람을 통해서 일치를 지향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극도로 메마른 시대가 현대라면 종횡의 참 모습을 실현하여 사랑의 결함에서 결과된 현대를 구원하는 길은 대화를 통한 사랑뿐이라 하겠다.
원자처럼 고립된 현대인을 그 고독에서 따라서 그 절망에서 구하는 길은 대화와 사랑이다. 그러므로 현대처럼 구원이 공동체적 방법으로 요구되는 때는 일찍 없었다. 롬발디 신부는 심지어 혼자 구원받으려는 사람은 모조리 지옥간다고까지 말했다. 이 점에서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교회의 모든 문제는 공동체적 문제이다. 공동체적 문제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모든 문제는 공동적으로 기획되고 검토되고 결정되어야 하겠다. 말하자면 문제를 중심으로 하여 대화의 광장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문이 비로소 여기서 활짝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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