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었습니다. 어디로 갈것인가? 마지막으로 동생을 한번 더 찾아보고 싶은 마음. 문득 아까 만난 고향아주머니 생각이 나서 다시 그곳으로 찾아가니 그 아주머니는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동생소식을 묻는 내게 그곳서 얼마 멀지 않은 공장을가리키며 동생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공장 문 앞에서 노크를 하니 공장 사장 부인이 나왔습니다. 나는 사실대로 사정 얘기를 하고 아주머니 말대로 찾아봤지만 내 허름한 옷차림새를 보고 다 없다 하며 돌아서는 그 여인, 다리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시 터벅터벅 아주머니한테로 오니 조금 있으면 퇴근이라면서 나를 위로하며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장 부인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안갑니다. 왜 그들은 4년만에 만나는 우리 남매의 정을 가로막을까?
무려 1시간이 넘어 기다린 끝에 나는 동생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보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가지 서로 눈물을 보이며 그동안 일들에 관해 물었습니다. 정하형은 군에서 제대하여 지금 인천의 라이타 공장에 있는데 어딘지 모른다는 것, 또 동생 정순이는 상주에 있는 국민학교 교장집에 식모로 있고 막내 경순이는 지금 자기있는집 친척인 그 당시 하동 경찰서장집 양딸로 갔다는데 나는 가슴에 무언가가 떨어지는것 같았습니다.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어찌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당장 시골로 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아직 어린 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습니다. 오직 부지런히 돈을 벌어 큰집보다 잘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복수라는걸 가슴에 새기기만 할뿐이었습니다. 4년만에 만난 동생 영순과 나는 서로 안녕을 빌며 헤어졌습니다. 내가 그때 할수있었던 말은 인천 형을 찾아가서 취직해 있겠다는말과 가서 편지 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습니다. 짓궂은 운명, 너무 팔자가 세서 타고난 고생을 한마디 반항없이 수긍하며 사는 동생들이 한없이 가엾고 불쌍했습니다.
당장이라도 흩어진 동생들을 모아 한 곳에서 살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과 마음의 자세가 안 잡혔습니다. 나는 열차에 올랐습니다. 그날 아무생각없이 서울로 가고 싶었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갈곳이 없었습니다. 형의 주소도 모르고 또 친척집에 신세지고 싶지 않았기에 남산공원으로 또 내가 옛날 살던 곳 등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반기지않는 곳, 쓰라린 추억과 행복했던 시절은 낙엽같이 흩어지고 남은건 육신의 고달픔과 무일푼인 주머니, 그렇다고 또 범죄할수는 없었습니다. 진실과 일확천금, 이들중 어느것을 택해야할지 내가 소년원에서 나올 때 그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나는 또 그들을 따라갔을 겁니다. 그들이 와있지 않았기에 나는 조금이라도 생각할수 있는 기회와 잠시나와 생활의 안정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나는 서울역 앞에 있는 중국집에 취직을 했습니다. 고된 생활이지만 잡념없이 살수있었기에 열심히 일했습니다.
문 앞에서 손님도 모시고 또 그릇도 씻으며 바쁜시간속에 인간이 살아가고 있다는것 오직 이것밖엔 더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달후 생전 처음 첫월급을 탔습니다. 무엇을 할까? 할것이 없었습니다. 나의 노력과 피땀으로 벌은 2천원, 그냥 아무데나 쓰자니 아까왔습니다. 물쓰듯이 쓰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이것이 보람이란걸 알았습니다. 결국 나는 그 돈으로 작업복과 생활용품을 샀습니다. 비록 먹고싶은 것도 많았지만 참았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계속되는 어느날 나는 우연히 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식당에 모셔와 식사대접을 하며 지난날의 얘기로 우리는 시간가는줄 몰랐습니다.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형은 공장에 가서 취직을 알아보고 되면 편지하겠다고 하며 잠시동안의 이별을 섭섭해 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속에 무더위는 한창 그 열기를 띠고있고 형이 다녀간지 보름이 지난 어느날 이번엔 둘째 동생 정순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낮 2시경, 문앞에서 손님을 모시고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자세히 쳐다보는 아기업은 여자아이, 옷은 때가묻어 새까맣게 얼룩이 져있고 얼굴 역시 세수를 안했는지 초라하게 보이는 여자아이.
나는 무심코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시간이 지나도 그곳에서 가지 않는게 너무도 이상해서 자세히 보았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 얼굴이 동생을 닮은것 같다고 생각했을때 그 애는 지하도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쫓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울음을 터뜨리는 그 아이는 내가 그리도 보고파하던 동생이었습니다.
북받치는 울음을 걷잡을새도 없이 우리는 서로 실컷 울었습니다.
얼마 후 동생을 데리고 동생이 있는 집을 갔습니다. 도등의 판자촌,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 주인은 없었습니다. 저녁에 오겠다고 하고 나는 식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 내 나이 17살, 동생 정순인 11살이었습니다. 만난 기쁨보다도 그 다음 문제인 동생의 앞길이 걱정되었습니다.
하나 둘 만나는 우리 남매를, 모두가 불행속에서 어쩔수 없는 운명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동생있는 집을 찾아 갔습니다. 그 집은 아주머니 한분과 어린애들 2명, 그리고 동생 이렇게 있었습니다.
살기가 무척 힘든 그 집의 생활, 아주머니가 행상을 해서 근근히 생계를 어어가는 형편인데 한달전 서울역 앞에서 울고있는 동생이 불상해서 어떤 아가씨가 데려와 지금의 아주머니에게 맡겼다는 얘기와 그래서 어린애를 데리고 장사하기 불편한 아주머니를 도와 어린애를 보게하려고 데리고 온 것이랍니다.
나는 무조건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아마도 동생은 상주 어느 국민학교 교장집에서 있다가 우리 남매들이 하도 보고파 무작성 상경했다가 다행히 이런 아주머니를 만났나 봅니다.
당분간 어떻게 할수도 없고 우선 동생을 그곳에 있으라 하고 식당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장사가 다 끝나고 인천 형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정순이를 만난 얘기, 그리고 이번 월급타면 인천에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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