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질서가 문란하고 대화가 막혀버린 공동체일수록 이상스런 소문은 이상스럽게 퍼지게 마련인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누구누구가 성명서를 돌렸고 누구누구가 해명서를 우송했고 누구누구가 건의서를 뿌렸는데 그 내용은 그렇고 그렇다는 등등 비건설적인 유언비어를 흔히 듣는다.「대화의 표식」라고 일컫는 공동체 안에서 대화의 단절 상태를 조장하는 유언비어를 비밀스런 방법으로 유포시키는 행위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경 받을 일이 결코 아니다. ▲「대화의 표지」인 공동체는 남의 행복을 위해 자기의 삶을 모두 바치기로 작정한 사제들과 사회에서 소금과 빛이 되겠다는 신자들로 구성되지 않았는가. 이 같은 공동체 안에서 대화의 단절상태를 드러내는 것은 무언가 크게 잘못돼 있음을 말해 준다. 초창기에 받은 수많은 유혈 박해 때문에 자기의 사명과 명분을 잊은 채 자기 보호에 급급한 소인들로 위축돼 버린 탓일까?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할 겨를이 없는 것 같다. ▲명실상부한「대화의 표지」를 드러내기 위해 교회는 우선 대화를 회복해야겠다. 사목 행정의 비민주화는 흔히 대화 회복을 저해하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민주적이 아니라는 말은 대화가 없다는 말과 직결되는 말이 아닌가. 또한 개방적인 민주 사회에서 봉건적인 군주체제는 합리적일 수 없다고 지적되고 있다. 합리성을 상실해 간다는 것은 권위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가. 권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지도 체계가 확립될 수가 없다. 이 같은 여건 속에서는 공동체의 내적 혼란과 유언비어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교회는 특히 교구 행정은 민주화돼야 한다. 어떤 민주화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지금처럼 사목권이 분담되지 않고 임기제에 의한 책임 행정이 없는 여건하에서는 교구장의 조정 및 통제의 폭(SPAN OF CONTROL)이 너무나 넓다. 통제의 폭이 지나치게 넓다는것은「나무는 보고 숲은 못 보는」상태에 빠져 행정은 마비되고 만다. 행정의 마비 속에서 불평불만은 난무하고 의욕상실증이 병발할 뿐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민주화되면 민주화될수록 그 지도자는 권위가 있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지도 지침은 권위의 요건이지만 순명과 불순명에 대한 상벌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삼국시대 촉한의 제갈량은 그렇게도 아끼던 마속이란 장수가 군율을 어기자 울면서 목을 참했다. 마속이 병략에 밝고 재주가 뛰어났지만 촉한의 군율을 위해 내린 제갈량의 결단을 읍참마속이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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