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가가 아닌 사람도 음식의 맛을 구별할 수 있다. 음식의 맛은 보통으로는 보편성을 갖지만 그러나 A에게 맛있는 것이 B에게는 맛없는 것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식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맛이란 주관적이다. 각자가 안에서 스스로 느껴지는 것임에 반하여 멋은 밖에서 보아 주는 객관성을 지닌 것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잘 차려진 식탁 위의 음식은 보기만 해도 구미가 당긴다. 주위의 무드나 환경도 맛을 자극한다. 설렁탕이나 곰탕이 뚝배기가 아닌 값 비싼 사발에 담겨져 있어서는 그 멋을 낼 수 없다. 살롱이나 스카이라운지의 고급 식당이 아니더라도 오막집의 한 구석에 조촐히 차려진 뚝사발의 설렁탕 한 그릇이 멋있고 맛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진짜 맛은 멋을 전제하고 진짜 멋은 맛을 동반한다. 맛 안에 멋이 있고 멋 안에 맛이 있는 법이다.
멋은 맛이 풍기는 향내요, 맛의 외적 모습, 말하자면 육체로 비긴다면 또한 맛은 멋의 정신이요 알맹이자 곧 영혼으로 비길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서 맛은 멋을 살찌우고 멋은 맛을 한층 더 높여 준다고 하겠다. 맛과 멋의 조화-이것은 물리의 세계에서 예술 종교 및 영성의 세계에로 통한다. 가령 예술가가 예술가로서의 삶의 참된 맛을 느끼지 못하고 멋만을 부린다면 예술가이기를 그치고 기술가에 지나지 않는다. 농대를 졸업한 학생이 농촌으로 가기를 주저하고 도시에서의 편한 자리를 찾는다면 멋은 있을지 모르나 벌써 맛없는 생활에서 실증이나 보람을 잃은 멋없는 생활이 되고 만다. 부하의 생명을 위해 수류탄을 껴안고 산화한 고 강 소령의 군인다운 멋 안에서 군인으로서의 삶의 맛을 볼 수 있다. 연탄차를 끌고 다니는 어느 노동자의 검은 얼굴에서 노동자의 멋을 보며 동시에 맛있는 삶을 읽을 수 있다.「맛있는 삶」「멋있는 삶」이것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삶의 맛은 삶의 목적에 얼만큼 적합하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측정되며 삶의 형태가 아니라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이런 삶이 될 때 모든 사람은 멋있는 삶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뚝배기든지 접시든지 간에 자기 나름대로 삶의 맛과 멋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 있는 삶이 될 때 말이다. 사랑은 삶에 맛을 주는 양념이요 멋을 더하는 효과를 낸다. 사랑이 없는 삶-양념이 빠진 음식처럼 싱겁고 먹을 수 없이 버려야 되는 결과를 낳는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뽈그로델은『하느님께서는 지금 그대가 있는 곳에 그대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들 그대를 그곳에 두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미국의 출판계의 왕자인 에드워드보크는『너는 언제나 어디서나 너로 하여금 무엇인가 달라지게 하라』는 선조의 유언을 받고 단신으로 12세 나 어린 신문팔이 소년은 유명인이 되었다. 현재 자기 존재의 위치와 이유와 타당성의 인식은 오늘의 삶에 맛과 멋을 준다. 우리 교회의 삶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사명과 목적이 오늘 시대와 환경 안에 분명히 있다. 그 사명을 인식하고 사명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교회의 모습 안에서 교회는 사회 안에 맛을,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으며 교회는 비로소 매력을 가진 멋있는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의 맛을 내려 할 때 그 시대와 환경과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소위 교회의 현대 적응(AGIORNAMENTO)을 포기하고 자기 도취와 안일무사에 빠질 때 교회는 매력 즉 멋을 잃고 만다. 수저로 먹는 좌석에서 혼자만이 포크로 먹는 것은 어색하다. 예수님의 매력은 절대의 신으로서가 아니라 나약한 인간으로서 신의 의지에 이르려는 그의 사랑과 인간적 고뇌를 느끼는 데 있다. 교회도 맛과 동시에 멋을 찾아야 되지 않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