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근본 정신이 사랑이라는 것은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지금은 거의가 다 아는 보통 상식이다. 그런데 새삼스레 사랑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시대의 조류를 망각한 퇴보적 행위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의 오판인지는 모르나 이천 년 전 팔레스티나의 유대 나라에 탄생하셨던 그리스도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을까 하는 것을 우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금전으로 살 수 없는 보옥 같은 가르침들이 현대 교회 안에도 전부 있기는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천 년 전의 그리스도가 될 수는 없다.
그리스도는 온전한 인간으로 육화된 존재였다. 그런데도 현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입만 전해 받고 있지 않는가? 하고 생각나게 한다. 입(口)사랑(?) 덕분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전체를 모시지 못하고 부분만을 모시는 기형적 형태로 사회 속에 군림하고 있지나 않을까? 그리스도가 떠난 교회는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주인 없는 집에서 나그네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인을 찾고 있는 현실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주인을 추방하려는 교회라면 정녕 싱거운 소금이 아니겠는가? 물론 그 중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짠 소금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얼마나 될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슬프다는 것이다. 신자가 외교인보다 더 나쁘다는 말이 들리는 간격이 자꾸 단축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과장된 표현도 있다는 것을 인정은 한다. 하지만 과장된 표현이 아무 근거 없는 데서 나올 수 있을까? 문제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과장된 표현이 나오게 한 신자들의 표양이라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한 번 미사 참예나 하면 신자의 의무를 완수한 듯한 일요 신자(?)의 정신과 성당 안에서만 신자가 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신앙은 인간 생활의 전체이지 부분이 아니다. 신앙을 위주로 인간 생활이 결정되어야 하지 인간 생활을 위주로 신앙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순서가 바뀔 때 사주 구령은 인간의 최후 최대 목적이 될 수 없다. 신자는 사주 구령을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 흔히들 사주 구령이 인간의 최후 목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제의 생활 태도는 이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살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라는 것이 사주 구령을 관념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때 비롯되는 것이나 아닐까?
또 그 이유가 사후 심판 때에 천주님이 참고로 생각하실 만큼 대전가 될 수 있을까?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책의 부피를 크게 만들려고 하신 말씀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하느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는 목적을 가진 교회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도 믿지도 실천도 하지 않는다면 누구의 말을 듣고 믿고 실천하려고 모였는가? 신자는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척하지 말고 정말로 사랑해야 한다. 말로만 사랑한다면 구태여 신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스도의 근본정신만 사랑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근본행위도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올바른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친 사랑은 예수님 편에서만 인간을 사랑하는 일방적 사랑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도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교환적 사랑이다. 때문에 신자는 자신을 그리스도화 되도록 힘써야 한다. 그의 신성에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그의 인간적 사랑의 실천만이라도 실행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교회는 항상 소방관처럼 긴장해야 한다. 사회의 자극이 미미하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언제나 진리를 위해서는 순교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 있어야 할 것이다. 또 현실만을 생각하는 협소한 사고방식에서 탈피하여 시간 너머의 세계로 눈을 돌리는 참된 종교적 신앙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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