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는 남의 위법행위로 인하여 법률이 보장하고 있는 자기 권력를 침해 당하고 많은 손해를 입었으면서도 경제적인 빈곤 때문에 소송 경비를 감당할 길이 없어 법률의 구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금과옥조의 법률이 도리어 원망스럽기만 하다. 결과적으로 돈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면 영락없이 법의 제재를 받거나 그 손해를 물어 주어야 하는 데 반하여 돈 없고 권력 없는 사람들의 권리는 침해하여도 뒷탈이 없으니 허용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만시지탄이 있기는 하나 이번에 그런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 보호를 위하여 법률 구조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즉 법률구조협회가 생겨 소송 비용을 대납하여 주고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할 수 있게 하여 주고 법률 상담을 통하여 사전에 권리 침해를 예방할 수 있게 하여 준다는 것이다. 소송 경비를 대어 준다는 것이 아니라 빌려 주고 승리하면 상환케 하는 것이 원칙이다.
작년 12월에 정부의 배려와 출자로 대한법률구조협회라는 재단법인이 설립되었고 금년 7월 1일부터 그 활동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뒤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 실효를 거두기 위하여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법률구조는 이미 선진제국에서는 일찍부터 발달하여 민간집체사업으로 또는 법률제도로서 확립되어 크게 그 실효를 거두어 왔다. 그런데도 그들보다 현저히 경제력이 약하고 남의 권리 침했가 빈번한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서야 법률 구조라는 생소한 말이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러기에 더욱 반갑고 환영할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법률제도로써 법률 구조의 실효를 거두고 있는 선진국의 일례를 들어 보면, 누구나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면 3년 대외의 수습과정을 치뤄야 개업할 수 있게 하고 그 수습 기간에는 의무적으로 무료 변호를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PRO DEO 제도라고 한다. 젊은 수습 변호사들의 그와 같은 변호는 그들의 실력 과시로 장래를 결정하는 문제이기에 열과 성의를 다하므로 그들의 손에 의하여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는 오히려 두터운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번에 발족한 우리나라의 법률 구조는 그 실효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로 그 단체의 성격에 관한 문제이다. 정부가 1천6백만 원의 보조금으로 추진한 법률구조협회는 민간단체인 재단법인이다. 바꾸어 말하면 법률 구조가 임의사업에 맡겨진 채 법률로써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법으로 강제하여도 그 실효가 의심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과연 어느 정도의 기대를 걸어야 할까?
둘째로 항구적인 재원이 문제이다. 정부의 예산상의 보조금에 의존해서는 명목뿐인 사업 이상을 기대할 길이 없다. 그래서 독지가의 기부행위를 호소하고 있다. 기본 재산을 마련하고 그 수익에서 자금 공급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사회의 실정이 문제이다. 빈곤한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는 대체로 재산이나 권세를 가진 자들이다. 그런데 법률구조협회가 그 재원 出연을 기대하는 대상자가 바로 그들이라면 과연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셋째로 발표된 바에 의하면 법률 구조를 받을 수 있는 소송의 종류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선 국가(또는 지방자치단체)를 피고로하는 배상청구소송이 제외되어 있다. 통계에 의하면 국가를 피고로 하는 배상 청구사건이 1년에 무려 5천여 건에 달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일응 공무원에 의한 국민의 권리 침해가 빈번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닐까? 그런데도 그 경우의 법률 구조는 제외되어 있다. 관계자의 변명을 들어보면 피고가 원고의 소송자금을 대어줄 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감상적으로 납득이가는 말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결과를 생각해 보면, 국가(공무원의 위법행위)가 빈곤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는 그 국민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결론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공무원이야말로 가장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를 존중하고 위법행위를 해서는 아니 될 위치에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그 감상적인 변명에 대하여 먼저 모든 공무원은 국가를 피고로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라는 공무원의 정도를 깨우쳐 주고 싶다.
넷째는 소가가 많은 소송사건은 그 혜택을 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구조 자금과 관계되는 문제이기에 이해는 간다. 금년도 계획을 들어보면 소가 30만원을 기준으로 3백 건을 구조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응 소가가 높은 소송일수록 중한 권리 침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중한 권리 침해는 경한 권리 침해보다 그 구조가 소홀하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결국 적은 자금으로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느냐 아니면 중한 권리 침해의 구조에 역점을 주느냐의 조정문제이기도 한다.
이상 몇 가지 예거한 것만으로도 그 해결에 많은 연구와 수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대개는 그 모순점을 지적함으로써 시정이 촉구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다만 자금 염출에 관하여는 새로이 우리의 소견을 첨언코자 한다.
그 재원은 사회보장제도의 이론에 따라 마땅히 개업 변호사들의 유료 변호의 보수에서 일정율을 징수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변호사의수를 늘림으로써 권리 침해를 받은 자가 적은 돈으로도 손쉽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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