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ㆍ4 남북 성명을 우리는 진심으로 환영한다. 남북이 통일되고 이 땅에 전쟁이 없어야겠다는 것은 온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바요 또 특히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대화는 시대의 징표로서 상호 이해를 촉구하여 인류 번영을 공동 모색하려는 이때에 이루어진 이 남북 성명은 우리 겨레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기뻐해야 한다.
그러나 남북 성명을 접한 우리의 심정은 실로 착잡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놀라움과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심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우리는 성명 이후의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첫째 놀라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사실 성명 발표에 우리는 너무도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움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극적인 현실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조국 통일과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어서가 아니라 쓰라린 6ㆍ25의 체험과 반공정신이 우리에게 있고 북한 공산 집단과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신조로 가진 우리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화를 할 수 없는 자를 단죄하고 동시에 그들과 대화를 하여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당황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상의 모순과 감정상의 곤란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더욱 적절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그것이 실현되어 가는 역사를 우리는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정신의 혼돈과 감정의 갈등이 없지 않을 것이며 더욱 반공에 투철한 신자인 우리들에게 얼핏 생각하면 더 많은 갈등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로 우리만이 참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배웠고 하느님의 진리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순수한 인간적인 차원에서 엄밀히 구별하기가 힘드는 북한인에 대한 동족애와 적개심을 우리는 교회정신에 입각하여 바르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갑자기 취해진 정치적인 조치로 국민에게 혼돈이 있다면 우리가 이 혼돈을 막고 사리를 분별해 주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현실을 차분히 정리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할일인 것이다.
둘째로 설명에 대한 우리의 기쁨과 놀라움은 일종의 두려움을 수반하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형제를 만난 것 같은 기쁨의 감격이 있는가 하면 적을 대하는 듯한 긴장도 있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공산당들의 무도한 기만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고 또 한편 그들 앞에 드러낼 우리들의 역량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화 없는 대결은 장막으로 가리운 채의 무력의 대치였다고 하면 지금부터의 대화 있는 대결은 서로 쳐다보며 모든 면의 우열을 견줄 총력전이요 우리 전체를 걸어 놓고 싸울 존재론적인 투쟁인 것이다. 이제는 좋은 무기를 많이 가지고 재빨리 다루는 것으로 승패를 가리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이제는 강한 정신이 있어야 하고 굳은 신념이 있어야 할 때인 것이다. 강한 정신은 올바른 정신이고 일치 단결된 정신이며 굳은 신념은 정신을 실현시키는 투철한 의지와 부절한 노력인 것이다.
불행히도 북한의 형제들은 공산주의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고 김일성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배워 익히고 살아온 4반세기 동안 전제적인 공산주의 이론이 비판 이전에 습성화된지도 모르며, 타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들이 미구에 우리를 보고 자유 세계를 알고 스스로 공산주의를 말살하고 자유 세계를 넓힐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에게 서슴없이 보여줄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가 존중되고 평등이 존중되는 사회에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인간다운 생활로 생의 의의와 보람을 찾아 복되이 사는 것을 그들은 보고자 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다 이러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공산주의와 대결하는 마당에서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더 분발하여 우리가 사는 사회가 이러한 사회가 되도록 대동단결하여야 하고 백 배의 노력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법을 희롱하는 특권층이 따로 있고 부의 편재가 극심하고 자유가 속박되고 불의가 횡행하는 무질서한 사회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만약 아직도 사회 질서를 문란케 하는 부정과 불의가 있다면 어느 때보다 과감히 시정할 것이며, 남용된 자유가 있다면 가차없이 처단하고 기본권의 자유는 엄숙히 존중할 것이며, 산업의 개발과 분배의 지혜로운 균등화로 사회의 인간화를 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공산주의는 이 땅에 더 있을 수 없을 것이며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가 이룩될 것이다.
교회가 인류에게 구원을 준다면 지금 이 사회에서도 보람된 길잡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이 국민에게 필요한 것이 합심단결하는 것이라면 모든 형제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려 하는 교회정신으로 우리는 단합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지금 이 국민에게 건전한 자유 사회를 이루는 것만이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이기는 길이라면 교회가 용납하지 않은 공산주의의 잘못된 이론을 배격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 공산 치하의 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치명정신으로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통일을 해야 하고 우리의 힘으로 공산주의를 말살해야 하는 이때에 교회의 사명은 실로 중대한 것이다. 온 국민의 정신의 바탕이 되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 교회인 것이다. 교회는 더욱 내실을 기해 지도력을 발휘하고 통일을 주도할 젊은 세대에 바른 정신을 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여 이제 우리의 신앙을 올바로 생활할 시기가 왔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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