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까 말까 망설이다 오늘이 최후라 생각하고 이 글을 쓴다.
제1처: 결혼선고를 받다
『정윤(집에서 부르는 이름)아, 시집가야지!』
『왜요ㆍ』
『○○○ 교수 처가 애기 놓다 죽었단다. 슬하에 딸이 하나 있긴 하지만, 아직 어리고 친할머니 댁에서 큰다니 좋고 지금 사는 아파트도 깨끗하고…』
침묵하는 나를 보고 다시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뭐, 너 역시 흠이 있잖니? 언니가 불치병에다 재산이 있니, 얼굴이 잘생겼니』
『할머니, 저는 사람하고는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만약 마음이 변해서 결혼을 한다면 국민학교 동창생하고만 할래요』
『뭐ㆍ애인이 있었구나! 숨겨둔…』
나는 스물아홉 처녀에게 재혼하라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고 혼자 상경을 해버렸다. 그리고 서울 남가좌 우체국에서 전보 한 장을 띄웠다. 이렇게 하여 7년 동안의 공백을 깨고 국민학교 동창생과 재회가 이루어졌다. 만남은 그가 다니고 있던 야간대학 캠퍼스 동나무 밑 벤치였다.
『나, 많이 늙었지?』
『아니, 생각보다…』
이 말만 남긴 채 우리는 호수가 보이는 의자에도 앉지 않고 그곳을 걸어 나왔다. 그가 정한 광화문 단팥죽집에서야 마주앉게 되었다.
내가 전보를 한 것은 수녀원으로 가기 전 한번 만나고 싶었노라고…하기 위함이었는데, 엉뚱하게도『나는 저와 결혼 하지 않으면 수녀가 될 거야.』라고 거꾸로 말해버린 것이다.
제2처 : 사람과 결혼을 하다.
두 사람 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부모 형제, 친척, 친구를 비롯 국민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만 모시고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은 대학 4학년 독학생에다 직장이라곤 박봉인 경찰서 경무과 순경ㆍ출근은 이르고 퇴근은 자정이라 온종일 긴장의 연속으로 잠을 청하면 엄마생각 지울 수 없어 눈물이 베개를 적신다. 가을의 낙엽만 봐도 눈물을 글썽이고, 남의 상여 뒤를 따라가며 울던 바보가 현실이 조금은 고달픈 모양이다. 그러나 한 이불 속에서 사는 짝꿍은 코만 드르렁 곤다.
애당초 신(神)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라면 인간은 보인 하느님이라 믿었던 것이 잘못일까? 무엇보다도 월급이 작다는 핑계로 월급봉투도 주지 않고, 한번은 무료로 받던 꽃꽂이 강습 중에서 선생님 권유로 꽃 항아리를 샀는데(내 돈으로)당장 갖다 주지 않으면 요강단지 깨어버리겠다고 모욕 하던 일ㆍ또 셋방살이하는 주인이 우리보다 나이가 적지만 주인 대접을 해 주라며 화장실을 갈 때도 발꿈치를 들고 사뿐 사뿐 걸으란다. 그리고 임신하여 입덧한줄 알면서도 일부러 소리 내어 토한다고 애꿎게 굴던 일. 이런 것들이 나에겐 더 큰 눈물의 요소가 되었다.
이윽고 뱃속의 아기가 임신 3개월째에 자연 유산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나는 예수께서 지셨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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