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딸 결혼식에 가기위해 루즈를 바르고 짐짓 표정을 잡아보고 있는데 시험치고 일찍 돌아온 16살짜리 큰아들이 빙긋이 웃으며『역시 바르는 게 나은데』하고 한 마디 했다.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낫다니까 좋다!』하고 같이 웃었다. 얼마 전 다른 친구아들 결혼식에 가느라고 분을 바르고 루즈를 칠하고 있을 때는 남편이 눈을 크게 뜨며『야아, 사람이 오래 살다보니까…』하고 놀려만댔지 이런 은근한 찬사는 보낼 생각을 안했다. 또 12살짜리 딸은 언젠가 내가 제 학교에 루즈를 바르고 왔다고 울상을 하며『엄만 그거 안 바르는 게 나아』하고 약을 올렸다. 나를 제 할머니로 알까봐 저를 위해 바르고 간 건데…그런가하면 8살짜리 막내아들은 제 형이 설악산 수학여행가서 나에게 사다준 금목걸이를 찾아다주며『엄마가 이거 결혼식 갈 때 하고 간다고 했잖아』하면서 더 모양내기를 바랬다. 누가 뭐란다고 할 거 안하고 안할 거 할 내가 아니지만 좋은 기분을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인지라 나라고 예외가 아니여서 두 아들의 긍정적인 반응이 남편이나 딸의 부정적인 반응보다 반가운건 사실이다. 그중에도 더 반가운 쪽은 목걸이를 할 용의가 없는 나에게 부담을 주는 막내보다는 기정사실을 그대로인정하고, 그 위에 「좋은 평」까지 해주는 큰 아들 쪽이다. 내가 어른이 되고부터 수십 년을 내 제2의 천성으로 삼고자 분투노력하고 있는 그 「칭찬술(Art of compliment)을 아는 아들이기에.
그런데 자칫 우리는「상대방을 위해서」라는 미명하에 그 개성을 묵살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가 쉬운데 과연 그게 상대방을 위하는 걸까?
어린애도 저 싫다는 바지를 입힐 수 없는데 하물며 인격적인 대우가 우선인 어른 사이에서랴, 사람사이의 온갖 불화가 대부분 이 개성을 무시하는데서 싹튼다고 하면 과언일까, 상대방을 아낀다는 명목으로 그 존재가치를 해치는 「끈끈한 애정이 짓이기는 사이」보다는 우리가 하나같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신성한 피조물」이라는 동료의식을 기본으로 「담백한 우정이 싹트는 사이」가 더 바람직한 사이가 아닐까. 부모와 자식사이든, 부부사이든, 친구사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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