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 사람이 아들을 둘 두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에 실패하는데 이 사람만은 착실하게 돈을 벌어 자기 재산을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던중 불생히도 이 부자 사람이 괴이한 병에 걸렸다. 그러나 그가 괴이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고 또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면 그의 사업이 크게 타격을 받을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한 아들은 아버지를 불쌍히 생각한 나머지『아버지는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빨리치료 받으셔야겠습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재산을 탐을 내어 아버지를 모함한다고 몹시 꾸짖었다. 그래도 아들은 자기의 관찰을 굽히지 않고『아버지의 옆구리의 빨간 점과 발가락 사이에 나는 진물은 틀림없이 그 몹쓸 병의 증세입니다』하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아버지는『아니다 옆구리의 빨간 점은 그저께 담뱃불을 떨어뜨려 입은 상처이고 발가락은 무좀에 걸려서 그런 거야』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다른 아들은 자기 사업을 위해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있던 중이었고 또 자기 사업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하기를『아버지 건강은 아주 좋으십니다. 아버지는 틀림없이 장수하실 것입니다』하고 말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또 다른 아들에게는『네가 언제 의학을 공부하였다고 그렇게 진찰을 잘 하느냐? 설사 아버지가 괴이한 병에 걸렸다 해도 그의 사업을 보아서나 우리의 장래를 보아서도 우선은 덮어 두어야 할 일이 아니냐』하고 꾸짖었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수님의 비유도 아니요 라퐁뗀의 우화 중의 하나도 아니다. 이것은 교회의 한 사제가 교회 내의 양극화 현상을 보고 만들어서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진부를 가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째서 이렇게 비유를 쓰지 않으면 안 되었고 왜 이러한 비유를 만들게 되었는지 우리는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교회 내의 양극화는 한국 교회만의 현상은 아니다. 歐ㆍ美 사회에서는 공의회 이후로 보수ㆍ헉신ㆍ전통ㆍ진보 등으로 나누어져 수없이 많은 논쟁을 벌여 왔고 지금도 의견 일치의 전망이 내다보이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 양극화 현상이 이제 우리 한국 교회에도 상륙했다는 것이다.
교회 내의 지도자들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고 있다. 모두가 다 가톨릭 교회를 위해서 노력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로의 의견과 행동은 극에서 극으로 다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서로의 생활 경험이 달랐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또 서로가 교회를 판단하고 인식하는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같은 가톨릭교회를 신봉하면서도 사상이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과는 거리가 멀고 우리 인간은 이 세상에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면 가톨릭교회로서의 이 지상 사명은 이미 끝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라고 해서 의견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오히려 이 의견의 차이는 발전의 기반이 되기도 한다.『16세기에 루터가 없었고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없었더라면 교회는 각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의견의 차이가 대립이 되고 대립이 대결이 되어 서로 미워하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의 불행이 되고 말 것이 아닌가? 사랑을 전달하고 실천하는 것을 사명으로 받은 교회가 미움으로 찬 교회가 된다면 진정 이 사회의 구원은 누구의 힘으로 이룩될 것인지?
교회 내의 양극화 현상은 반드시 악이 아니다. 그러나 이 양극화는 대화로써 사랑으로써 희생으로써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와 사랑과 희생이 없는 교회는 그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회 지도자뿐 아니라 성직자 수도자 평신자 모두가 다 자기 위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덕행을 실천해야 하며 또 각자는 자기의 신앙생할을 다시 한 번 반성해야 한다. 나는 진정코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내 자신의 욕심이나 내 개인사업을 더 중요시 하지 않는지 잘 반성해 보아야 한다.『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룸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고 입으로는 말하고 마음과 행동으로는 『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소서』하는 가톨릭 신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다같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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