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자 일본 가톨릭신문 1면 톱에는「정의는 울고 있다」는 제하에「일본인의 사회 구조와 복음」을 주제로 가톨릭사회문제연구소가 주최한 세미나 내용을 실었다.「정의는 울고 있다」는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데다가 정의가 울고 있는 것은 일본 사회에 부정이 정의가 돼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더욱 그럴 듯하여 관심을 끌게 한다. ▲정의는 여러 가지 얼굴이 있어 아무리 화장을 하더라도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끌 수 있는 애교 만점의 얼굴이 되지 못한다. 사람들로부터 피함을 당하여 울면서 고독하게 이 세상을 지나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과 국가는 가난한 사람이 없는 공동체나 정의로 기초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자기의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남는 것은 희사하여 남을 돕는 편을 더 좋아한단다. ▲사람들이 시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정의는 엄격한 반면 시사는 좋은 기분을 주고 ⊙정의는 의무를 부과시키지만 시사는 남의 은인이 된다. ⊙시사를 하면 남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경의의 눈물까지 보게 되며 ⊙정의는 자기의 재산을 나눠 주는 것인데 시사는 남는 것을 나누어 줌으로써 만족을 얻는다. ⊙정의는 생활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전복시키지만 시사는 자기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와 같이 여러 가지 신을 공존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생 동안이나 1년에 걸친 묵상 재료가 될 것이라고 동기사는 덧불이고 있다. 일본 사회를 정의가 울고있는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정의를 초월한 사회라고 보는 이도 있겠지만 이번 수해를 만나고 나니 새삼 정의를 애타게 불러야 할 입장이 될 것 같다. 1천 명에 달하는 인명 피해와 1백40억에 가까운 재산 피해를 낸 이 판국에 우리는 일본처럼 정의가 어떻고 시사가 어떻고 하며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다. ▲주는 이의 마음가짐에 따라 시사가 연보도 되고 나아가 정의도 될 것이다. 문제는 돕는 이가 얼마만큼 피해자 입장에서그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생각하고 어느 정도까지 자기를 희생하면서 피해자를 돕느냐에 달려 있다. 요컨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 따라 울던 정의도 웃게 되고 죽었던 정의도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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