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칠 교(敎)와 모일 회(會)로 교회를 표기한 것은 교회의 근본사명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데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가 다스리는 일에 너무 부심하느라고 가르칠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뼈아픈 평판이 없지않다. 이러한 교회의 사정은「권위의 위기」란 표현으로대변되기도 하고 구체적으로는「주교노릇 하기가 힘드는 시기」라는 개탄이 공식석상에서까지 언급되기도 한다. ▲「사목」3월호에 실려있는 故 한공렬 대주교의 수필「권위의 위기」에서도 이같은 현실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서거전에 정기간행물에 투고한 마지막 글이라고 생각되는 이 수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군대모양으로 항명죄가 준엄하게 다스려지지도 않고 관청모양으로 증봉(增俸)ㆍ승진이 약속되지도 않고 폭력 금력(金力) 권력이 통하지도 않는 사회 혹은 단체 의어른노릇 하기가 곤란하다는 비명이 요즘 자자하다』▲비명이 자자하게 된 시대적 흐름과 교회 내적 원인들을 쉽게 짐작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전통적인 순명정신에서의 급격한 일탈에 대응할 행정기술을 재빨리 개발하지 못하는 현실은 더욱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다. 소수의 성무기피와 독선과 물욕이 질서를 어지럽히고 일치를 허물어뜨리고 평화를 파괴하는 상황, 그로 말미암아 더욱 심각한 잡음이 일게되는 악순환을 중지시키는 작업은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단행돼야 한다.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는 이러한 악순환을 봉사적인 권위가 우물우물 인내하려는 것은 덕도 아니요 자부적 사랑도 아니다. 사랑할줄 아는 자는 벌할줄도 안다는 프랑스의 속담도 있다. 벌자를 뜯어보면 꾸짖을 罰(리)와 칼刀로 돼있으미 칼(刀)을 들고 위엄을 주며 험한 표정(四)으로 꾸짖는다(言)는 뜻이겠다. 「연약한 매는 경멸을 받고 적당하게 매를 다루는 자는 존경받는다」자부는 자식을 타일러서 안되면 매질도 하고 굶기기도 하고 내쫓기도 한다. 자부의 매질이 결코 보복조치가 될수는 없다. ▲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때 順心者에겐 보상을 늘여주고 순응으로 생기는 불리함을 최대한 덜어주며 불응자에겐 불리함을 가중시키고 불응으로 생기는 이익을 최대한 줄인다. 이같은 정치ㆍ행정의 개론에서도 논하기가 멋쩍은 초보적인 원리다. 사목행정도 행정이라면 합법적이고 봉사적인 권위가 공익을 위해 합당한 일을 하려 할 때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것이 또한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