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주교단은 매년 춘추 2회의 정기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공의회 이전에도 사목상의 공동관심사에 대하여 전국 주교들이 협의하고 있었으나 공의회 이후에는 사목상 효과의 증대라는 실리적 이유뿐 아니라 주교단의 단체성이라는 교리적 차원에서 주교회의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관구회의 전국회의 국제회의 등을 자주 개최함은 주교의 사목직이 1개 교구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교황과 더불어 세계주교단의 한사람으로서 전세계의 교회를 사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국 주교회의는 한국교회 전체의 발전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만큼 여기에 참석하는 각위(各位)주교는 자기교구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의원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사목하는 주교단의 일원이다. 따라서 한국교회 전체의 공동관심사나 공익에 관계되는 결의사항은 비록 주교회의가 현행교회법상 각주교를 구속하지는 못할지라도 이 결의에 순응하는 도의적 책임을 부과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교회의에서 의결 공포한 사항이 어떤 교구에서는 전혀 실시되지 아니하는 기현상은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주교회의에 대한 일반 신자대중의 무관심은 그 결의사항 실시의 비능률 비효과의 최대의 원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관심을 조장하는 것이 한국 주교회의의 전근대적 비공개성 및 關饋性이다. 긴급한 필요성에 의하여 소집되는 임시회의는 예외로 하더라도 정기총회에 있어서도 그 준비과정이나 회의진행이나 결의시행 등은 비밀의 장막에 싸여있다.
의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적어도 신자대중에게 직결되는 중요한 의제에 대하여 교구 수준에서 책임있는 성직자와 평신자와 함께 의논하는 교구장은 아마 예외에 속할것이다.
또 주교회의 산하에 의제를 미리 분석 비판 정리하여 준비하는 전문위원회같은 것은 오래전부터 요청되어 왔지만 감감소식이다. 그 결과는 사무국장 회의나 경리부장 회의의 안건에 불과한 의제까지 포함하여 수십가지를 본회의에 상정하여 그 어느 한가지도 충분히 토의하여 원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유명무실한 급조위원회를 만들어서 문제를 회피하거나 무기한으로 연기해 버린다. 회의를 진행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비공개 회의인만큼 그 내용을 알수 없으나 원칙적인 면에서 말하자면 모든 회의를 시종일관 비밀회의로 하는 이유를 납득할수 없다. 꼭 비밀로 해야되는 안건이 토의될 경우는 별문제이지만 통상사목에 관한 토의에는 의결권을 갖지않은 보좌관을 대동하는 것이 원만하고 신중한 토의에 도움이 될것이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주교들의 의견만이 완전할수도 없고 최상일수도 없기 때문이다. 욕심을 말하자면 교회 매스콤 종사자들 이 방청하는 가운데 회의를 진행한다면 좀 더 철저한 회의가 될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야만 회의 결과에 대한 오보시비도 줄어들 것이다. 회의 결과를 처리하는 과정에도 좀 더 철저를 기하면 좋겠다. 어떤 결의사항을 해당기관에 통보할 필요가 있으면 반드시 문서로써 할것이요 보고를 받아야되는 사항은 반드시 시한을 명시함이 상식에 속한다. 아무리 가톨릭시보에 보도되고 경향잡지에 실려 있을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직접 해당자에게 통고된 것으로 볼수는 없다. 신문이나 잡지는 대중홍보 수단이지 공문전달기관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교회의 결의사항 중에는 주교단 산하의 여러기관이나 단체가 형적으로 협력해야만 될수있는 일이 많은데 이러한 모임을 주선할 부서는 현 단계에서는 주교회의 사무국밖에는 없는 모양이고 동사무국은 천주교 중앙협의회라는 거창한 공식명칭과는 달리 인원도 부족하고 예산도 부족하고 장비도 부족해서 이런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실정임이 알려져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교회의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크다는 것을 솔직히 표명하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주교회의의 발전을 염원하는 나머지 몇가지 기술적인 면에서 고언을 제기하였으나 여기에는 아마 인물의 빈곤과 재력의 빈곤을 핑계로 내세울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가 가진 인적 물적역량이라도 충분히 활용한다면 현재보다는 양상이 달라질수 있다고 믿는 바이다.
모든 회의권위는 외부에서 주는 것이 아니고 교의자체의 내실에 달린 것인만큼 한국 주교회의를 시시하다고 보는 신자대중의 여론을 관계 당국자들은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주교회의 멤버 개개인이 권위주의에서 탈피할 때에 비로서 주교회의와 신자대중이 밀착할 때에 비로소 사목의 효과를 거둘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하는 주교직 자체가 봉사직이라면, 봉사받을 하느님의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보려는 노력이 사목의 제일 요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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