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고 우셨다』(루가 19, 41)
사제의 서품식이나 수도자들의 서원식의 절정은 제대에 부복한 청원자들의 젊은 육체와 깨끗한 영혼위에 흘러넘치는 성인호칭기도를 함께하고 있을 때다. 그들이 내 혈육이 아니더라도 주체키 어려운 감동을 준다. 신비롭다. 그래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왜?
인간의 본능적 행위는 살아남기 위함이다. 사회적 행동의 동기는 거개 「살아남기 위해 자기 것을 챙겨 쌓아두기」위하여 서이다. 그러나 서품식이나 서원식 때의「부복」이라는 자세는 「내어놓는」자세이다. 『자! 이제 네 알아서 해라』이다. 어쩌면 무지막지한 똥배짱이고 억지일 것 같다. 그렇다면 감동은 옅다 더 진한 감동은 부복한 그들이 본능과 소명 사이의 갈등을 자신의 십자가로 지고 살아가 보겠노라고 그 힘든 과정을 거쳐 어렵게 결단 내렸기 때문이다. 지상과 천상의 통공(通功)을 믿는 우리교회이기에 다 함께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천상이 성인들까지도 동참시켜.
우리들 행동의 동기는 「이익」이지만 예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의 동기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자신의 이익보다 우는, 아파하는, 서글픈 신세들에 대한「연민」을 우선 선택키로, 부와 재산에 대한 믿음보다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믿음」을 선택키로 결단한-세상을 거꾸로 사는-사람들의 모습은 감동이고 그런 마음의 변화를 일으킨 것은 신비이다.
그래서 내겐 신비로움에 대한 감동이 일어나고 젊은 그들이 평생 몸으로 살아야 할 「갈등의 십자가」에 대한 애처로움의 눈물도 흐른다.
배고픈 이는 다른 배고픈 이의 주림을 안다. 아픈 이는 앓는 고통을 이해한다. 건강한 이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안락한 집에 사는 이들이 집 없고 자식 진학을 못시키는 이들의 비애를 자기의 것으로 하기는 힘들다.
예루살렘의 붕괴와 도살당할 백성들의 아픔을 예견하신 예수는 슬피 울었다.
신부님 주교님! 성당에서 내려다 본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애련함 때문에 몇 밤이나 울며 잠 못 드는 하얀 밤을 지새셨습니까?
이번호부터는 마산 상남동본당 박창규씨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해주신 민병숙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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