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참되게 살겠다는 마음가짐을 실천에 옮기는 나의 노력속에서 나는 가끔 동생 있는데도 가보고 또 식당에서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한달이 또 지났습니다. 이번에도 받게된 월급 2천원, 2달간 이집에서 일했으나 아직 그릇 한번 깨뜨린일 없는 나 내가 형님있는데로 가겠다고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섭섭한 표정으로 종종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그곳을 나와 동생이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반가움과 함께 내 입에서 나오는 말만 기다리는 동생에게 나는 형님있는데 가서 며칠후 데리러 오겠다고 하고 인천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오라는 답장도 안받고 가는 길, 그러나 나는 형과 같이 있고 싶었습니다. 도착하니 밤, 처음 와보는 곳이기 때문에 여인숙에 들어가 하루를 지냈습니다.
이튿날, 이곳저곳을 물어 겨우 찾은 형님이 계시는 곳, 크지않은 시설이었지만 모든 면모는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수위실에서 잠시 기다린 후 나는 곧 형을 만나 공장안으로 들어오니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기에 나는 이곳저곳 공장 구경을 하며 형의 퇴근시간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으윽고 5시, 형과 나는 공장에서 나와 말없이 그저 한참동안 걸었습니다.
가슴에 가득한 말들을 어찌 다 말할수 있으리요만, 형이 뭔가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형을 바라 보았지만…
얼마간 걷다가 형은 우뚝 어느 대포집 앞에 섰습니다. 나를 보고 들어가자는 형님, 난 사양했지만 억지로 내 손을 끌고 들어간 형은 대포잔에 가득히 술을 따라주며 마시라고 했습니다.
나는 형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단숨에 마시고 형에게 한잔을 따라드렸습니다.
어릴때 그렇게도 무섭던 형 그속엔 나를 잘되라고 꾸중하신걸 이제야 비로서 알수있었습니다.
서로가 모든것을 잃고만 지금 외로운 마음에서 비록 아버지는 다르지만 우린 서로 위로할수 있는 위치였습니다.
말없이 마시는 사이 어느새 한 주전자의 술이 바닥났습니다. 다시 한 주전자를 더 시켜서 거나하게 취한 우리 형제는 또 다시 걸었습니다.
그저 무거워지기만 하는 내 마음. 지금껏 굳굳히 삶을 진실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형.
그러나 어린나이에 法의 테두리 속에서 맴돌아야 했던 나, 우리는 형제지만 너무나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형을 보기가 부끄럽고 민망해 마냥 고개를 숙이며 걷는 내 손을 끌어다잡으며 형은 그가 자취하는 집까지 데리고 갔습니다.
마치 공장과 같은집 거기엔 형과 같은부에서 일하는 사람이 5사람이나 있었는데 형은 기술자이기 때문에 우대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튿날, 난 형을 따라 공장에 일하러 갔습니다. 감독관에게 말하며 내가 일하게 된 곳은 인쇄부, 금속인쇄였으므로 난 감독관을 비롯해 모든 공장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날부터 일하게된 나 식사는 공장에서 해먹는데 나 또래의 애가 식사당번이었으므로 내가 온 후로는 둘이서 교대로 밥을 했습니다.
참 인쇄부 안에는 여자직공들이 10명 정도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되면 쌀을 씻어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 나는 여자들이 왔다갔다 하는데서 해야 하는데 좀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차찿 낯익어 가니가 정이 들고 일하는게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이곳에 와있게된 후
형은 동생도 데려와 우리가 자취하는 집에서 청소도 하고 밥도 하게 했습니다.
정말 무척도 오랜만에 비록 셋이지만 같이 살게되는게 참 기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취하는집 주인 아주머니가 내 동생을 잘보았는지 자기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정순이도 가겠다고 하니 우리는 말릴수가 없었습니다. 또 우리와 같이 있을만한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자취방이라 본인이 의사대로 보냈지만 왠지 난 참 섭섭했습니다.
동생이 새로 가게된 그 집 주인은 육군소령이고 또 어린애와 아주머니 이렇게 세식구이기 때문에 고생되는 일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형님께온지도 한달,
그동안 나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남이 하기싫어 하는 일도 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무조건 했으며 형은 내가 부지런한걸 보시고 혹시 병이라도 안 생길까 걱정하시며 자주 쉬라고 했습니다.
어느덧 월급날.
공장안에는 월급날이라 전부 웃는 얼굴들, 그들의 얼굴표정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가만히 내 월급 액수를 그려보았습니다.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 남보다 열심히 했으니 3천원은 되지않을까? 얼마후 감독관이 한사람씩 노란봉투에 적힌 이름을 부르며 나누어 주는 돈 마지막으로 내 차례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받은 내 월급에 나는 그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일금 5백원」
한달동안 비록 기술은 없었지만 남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한 노동의 댓가가 너무나도 기대에 어긋난 소액.
여기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한참 범죄할때에 차비밖에 안되는 그 금액. 그것을 손에 쥐고 멍청해있는 나를보고 형은 나를 위로해 주셨지만…
그러나 그때만해도 사회를 모르는 나는 어린마음에 억울한 생각이 들어 또 다시 그 옛날 일확천금의 범죄생활이 그리워졌습니다.
그 당시의 그 생각, 그것이 내 인생에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다줄지 또 무엇이 나를 기다리는지도 생각지 않고 서운하고 야속한 맘만 내 가슴에 맴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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