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지나쳐 듣던 어떤 말이 갑자기 되살아나 그후부터는 가끔 그 말을 되새기며 생각해 보는 수가 있다.
나이 들수록 해야할 일도 많고 생활이 복잡해지는 까닭인지 차츰 건망증 때문에 나는 적지아니 시달림을 받는다. 분명히 핸드백속에 넣어두었다고 생각한 귀중한 서류가 거짓말처럼 없어졌다든지 날이 흐려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영 기억할수 없다든지 그런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어느날 금방 손에 쥐고 원고를 쓰던 만년필이 어쩌다보니 없어져서 찾느라고 온 방안을 뒤지고 법석을 떨었는데 그때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있는곳에서 찾아라)
이 말은 까마득한 어린시절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였든가 그때의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가 어려서는 제법 찬찬하고 영리한 편이었든지 담임선생님은 으례히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선생님 집에 가서 만년필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만년필을 사뭇 소중이 받아 손에 꼭쥐고 학교에 가져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던길을 다시 오락가락하며 허겁지겁 찾아봤지만 결국은 찾아내지 못하고 겁에질려 울면서 선생님께 간 것인데 그때 선생님은 화를내지 않고 조용히 말씀하시었다.
『성숙아 있는 곳에서 찾아야지 없는데를 아무리 찾으면 뭘하니 다음부터는 꼭있는 곳을 찾아봐라』
당연한 말씀이다. 그러나 야단을 안맞은 것만은 고마웠으나 어린 나에게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으며 원망스럽기조차 하였다.
『있는곳을 알면 뭣 때문에 찾아』
이렇게 생각했었다.
요즈음 자꾸 뭔가를 잊어먹으니까 어릴때 무심하게 들었던 그 말이 불꽃처럼 되살아나 그 말의 숨은 뜻을 내 나름대로 생각하게 되었다. 애를 태우며 뭔가를 찾을라치면 의례히 어릴때 담임선생님이 하시던 그 목소리가 들린다.
『없는데서 찾지말고 있는곳에서 찾아라』참말 귀한 말씀이라 여겨진다. 우리가 허둥대며 엉뚱한 곳에서 찾으니 찾을수가 없을것이다.
산에서 물고기를 찾으면 있겠는가 바다에서 도라지를 사과나무에서 오랜지를 돼지울에서 진주를 찾으면 있겠는가. 맑은 눈으로 때묻지않은 양심으로 우리가 찾고자하는 것을 찾을때 우리는 반듯이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낼 것이다. 『있는 곳에서 찾아라』이 말을 가끔 되뇌이고 보니 열두살의 어린 예수님께서「빠스카」첨례날「예루살렘」에서 그 어버이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내 아버지의 일이 있는 곳에 나 마땅히 있을줄을 모르셨나이까? 』
▲지금까지 구중서씨(문학평론가)가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임성숙씨(여류시인)가 집필해주시겠습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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