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거리에 나설 때마다 노점에 소담스레 벌여놓은 노오란 밀감을 볼 때마다 바쁜 발걸음을 늦추면서 몇 개만이라도 사서 나의 아내와 어린 자녀들에게 맛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시루속의 콩나물처럼 한없이 올라오지만 부족한 용기탓인지 지금까지 한번도 집으로 사들고 가본적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밀감 한개당 40원에서 50원씩을 받고 있어 우리집 식구사정으로 볼 때 나를 빼놓고도 3명이니 3개만 사더라고1 20원이나 된다.
그런데 호주머니에는 전연 돈이 없는게 아니고 십원짜리 동전 몇잎과 백원짜리 지폐가 한두장 정도 있을때가 더러있지만 그것으로 밀감을 사고나면 그 주일의 주일예물이 없어지기 때문에 감히 사지를 못한다. 더군다나 아내가 임신중인 지금은 나와같이 주일미사를 갈 때 밀감장사 앞에오면 옆을 쿡쿡 찌르면서 밀감을 한개만 사달라는 눈치지만 아내도 나의 주머니사정을 잘아는지라 강요를 못하고 그저 내 눈치만 본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감고 성큼성큼 먼저 앞서 가 버린다.
그토록 밀감만 보면 서운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던 것이 지난 성탄 때는 누가 선물로 드렸는지 사제관 응접실에는 화분에 심은 아담한 밀감 나무가 창 옆에 놓여 있었고 가지마다 주먹만큼씩한 밀감이 20여개 주렁주렁 달려 있어서 밀감은 거리에서만 아니라 성당에서까지 나를 유혹하더니 요며칠새 누가 다 따먹고 시들한 푸른잎만 남아있었다.
나는 무슨 일에든지 돈문제가 뒤따를땐 반드시 주일예물과 교무금과의 함수관계를 생각한다. 그래서 설사 내가 밀감을 몇 개 산다고 하더라도 그 주일의 미사예물이 밀감을 산 값에 미치지 못할땐 몸씨도 마음이 캥기고 주님께 미안한 마음마저 일어난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주일마다 백원짜리 지페를 척척 바치지도 못한다. 어쩌다 나의 월급 외에 잡일로 부수입이 몇백원 생기면 호주머니에서 백원짜리가 나가고 그렇지 못할땐 할 수 없이 아내와 함께 십원짜리 동전을 몇잎씩 갈라서 예물함에 넣는다.
그런데 나는 백원짜리를 바칠 때보다도 십원짜리 동전을 바쳤을때 더 주님께 가까이 매달린다. 어쩌면 그다지도 바리세이와 세리와의 비유가 나에게 적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도 아내가 먹고싶어 하고 내가 사가지 못해 미안해하던 노오란 금빛의 밀감을 지난 구정때 본당신부님으로부터 얻을수가 있었다. 신부님께서는 손님과 함께 술잔을 들고 계셨는데 내가 들어서자 나에게도 술을 한잔 주는것을 사양하자 밀감을 성큼 한봉지 주시는데 나는너무도 속으로 기뻐서 밀감을 받아서 먹지않고 주머니에 넣고 용무를 마친후 집으로돌아와 밀감을 내놨더니 아내는 물론이요. 토마스와 로사가 한 개씩 손에들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것을 본 나는 눈시울이 뜨겁도록 흐뭇했다. 그러면서 나는 앞으로는 잡일을 더해서 주일예물도 더 내고 밀감도 사주마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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