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에 가장 강우량이 많았다는 지난 번의 비는 이 나라에 이루 말할 수조차 없는 막대한 수해를 가져다 주었다. 그 피해 상황의 전모는 아직도 다 드러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러한 피해 상황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가슴 아픈 것은 어찌하여 이 나라에는 이다지도 하늘로부터의 시련이 많은가 하는 그것이다. 해마다 연중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이 대자연으로부터의 피해를 어찌하여 막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대자연의 위력 앞에 제아무리 달나라를 정복한 인간일지라도 그것은 한낱의 견위와도 같은 것이리라. 인간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무력함을 탄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옛말에도「修人事待天命」이라 했는데 과연 우리는 우리들 약한 인력으로나마 할 수 있었던 일을 다했던가?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인다운 긍정적인 입장에서 고찰해 보자. 어번 이 끔찍한 수재는 곧 하늘이 이 나라에 내리신 사랑의 채찍이라 본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해마다 되풀이되는 장마에 대한 대비를 너무나도 소홀히 했음을 하늘은 책하신 것이다. 그리고 조금씩 덜 아프게 때려서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큰 매를 드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 하늘의 뜻을 알아들어야 한다. 수문의 점검은 여름철에 들어서자마자 했어야 했다. 양수기의 성능 조사도 마찬가지다. 돈만 알고 인명을 경천히 여기는 악덕토건업자들의 날림공사를 비책하신 것이라 보야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숙연히 고개 숙여 스스로를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러한 과오를 다시는 범하지 말도록 해야 하겠다.
그럼 다시 이번에 비명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많은 영혼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분들의 죽음은 결코 헛죽음이 아닌 것이다. 그분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몸소 희생되신 분들임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들 모두가 받아야 할 벌을 그분들이 대신해서 받았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진정 우리는 그분들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그렇다면 목숨을 부지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들 모두가 보다 더 인간의 존엄성을 알아야 하고 보다 더 동포애를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분들의 영혼에 보답하는 일 뿐인 것이다.
우선 첫째로 그분들의 유족들에 대한 구호의 손길이요, 둘째는 생명은 살았으나 죽는 것 못지 않게 고초를 겪고 있는 수10 만명의 수재민에 대한 동포로서의 따스한 손길을 뻗쳐 주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우리 교회로서 반성할 일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는 번번이 남의 도움만 받아 왔지 우리가 남을 도운 일이 별반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회는 그러한 일로 인해 남을 돕는다는 교회의 기본 자세마저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교회의 본질은 재론할 필요도 없이 세상에 대한 봉사에 있다. 그것은 주께서 이 세상에 봉사하러 오신 뜻과 합일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렇게 함으로써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권위가 아니라 진정으로 왕다운 모습으로 되는 것이다. 특히 버림 받은 형제들을 위해 가난한 이웃을 위해 교회는 봉사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교회 본연의 모습을, 우리의 손으로 손상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 아닌 일반 시민들이 그렇게도 숙성으로 수재민을 돕고 있는데 그리고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이 그처럼 헌신적으로 참변을 당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 우리는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된다. 그들 몇 배 이상으로 따스한 손길을 뻗쳐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그 손길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신자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생활일진대 이번 이기회야말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기회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의 엄청난 수재를 주님의 사랑의 채찍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보다 적극적으로 주님의 사랑의 증인이 돼 주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겨우 생명만 부지하고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동포들은 무엇보다도 형제들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보고만 넘긴다면 우리는 主님 앞에 무어라 변명의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는지….
진정 주께서는『분명히 말하지만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다』(마테 25ㆍ4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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