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ㆍ하ㆍ추ㆍ동 사시를 살펴볼 때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계절의 바뀜 속에서 봄은 포근하고 따스한 했살을 맛보게 되고 겨울은 역시 겨울답게 꽁꽁 얼어붙어야만 참으로 겨울다운 계절의 제맛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름! 여름은 싱싱한 젊음의 계절. 삶을 힘차게 노래하는 약동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헉헉 숨이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는 정말 살인적인 더위라고 짜증을 부리기 일쑤다.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필요한 조건이 많다. 적당한 온도와 영양과 물과 태양… 흡사 바이러스의 성장 조건과도 비슷한 얘기지만 우리 인간도 역시 동물인지라 항상 적당한 조건이 생활의 필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 여름엔 20년만의 혹서라고 무더워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얼마큼 올라갔으니 생활 조건이 알맞지 않다는 등 심지어는 불쾌지수가 높아져 범죄의 발생 빈도가 비례해서 높아졌다고 하니 이름 그대로 혹서는 혹서였던 모양이다.
우리는 수도자들의 두텁고 긴 수도복과 머리를 감춘「콘넷」아래서도 어느덧 진땀이 죽죽 흘러내릴 정도였다. 로사리오 기도 중의 묵주알들이 흡사 올리브 기름에 담그었다 꺼낸 것처럼 반짝이며 손바닥에서 미끄럼을 탔으니 말이다. 땀이 전신에 온통 젖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방 안의 공기가 뜨거워지고 정말 더워서 안절부절 당황하다 보면 수도복을 입은 채로 풍덩! 푸른 물결 속에 인어가 되어 보고 싶은 충동도 일어나지만 그것은 잠깐, 모든 인간사가 다 그렇듯이 더위도 쾌락도 일시적으로는 해소될지 모르지만 영원한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땀이 흐른다. 흐르는 땀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뜻없이 한가롭게 흐르는 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값진 땀 즐겁게 놀면서 흐르는땀 등… 어떤 땀이든지 그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기왕이면 값진 땀을 흘리기 위해서 불단히 노력해야겠다.
다른 사람들은 피서여행, 바캉스라고 산으로 바다로 행장을 차리고 떠들썩하게 떠날 때 나는 조용히 더위를 직시하고 음미해 보기로 했다.
근자에 와서 사람들이 유난스럽게 더위에 민감하고 떠들어대는데 우리가 사는 지구는 과연 그만큼 뜨거워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떤 심리학자가 말한 것이 생각난다.『사람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더욱 더 슬퍼지고 달아남으로써 더욱 무서운 공포 속에 싸인다』라고 했듯이 오늘날 우리도 덥다고 이야기함으로써 더욱 더워지는 것이 아닐까. 날마다 더워 더워 소리치면서 오늘은 몇 도 내일은 다시 몇 도 라고 떠들어대기 때문에 더욱더 무더워진다고 생각한다. 여름철에 거리에 나가 보면 가게마다「디자인」도 미려한「에어콘」 선풍기 냉장고 등, 납량 기구들이 밀림의 수풀처럼 잔뜩 쌓여 있고 사람들의 옷차림도 갈수록 더 짧게 짧게 시원하고자 노력하는데 더위는 더 기승을 부리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더위는 누구에게나 고통되고 평등하게 느껴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잠자리 날개처럼 화사한 옷으로 짧게 차려 입고도 더욱더 불평이 많고 다른 사람은 말이 없는 것일까.
생활의 태도에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주는 그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현실을 긍정적인 자세로 받아들이는 태도. 누구에게나 주어진 계절의 혜택과 계절마다의 독특한 맛을 한껏 즐기도록 하자.
차차 더위가 익어 이젠 노종이다. 지난 23일로 처서까지 지났으니 몇십 년 만의 무더위도 이제 멀리 간 모양이다.
가을이 오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짙푸르던 여름의 녹음을 아쉽게 꿈꾸게 될 것이다. 모든 가 버린 것들은 아쉬움의 나래를 오래오래 우리들의 마음에 늘어뜨린다. 더위 속에서 가버린 지난 겨울의 함박눈을 상상하면서 더위는 더위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래서 가장 여름다운 맛을 제대로 즐기기로 하자.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영욕을 맘껏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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