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뮌헨」에서 각각 개최되었던 남북 적십자 회담과 올림픽대회의 뉴스 홍수 속에서 분주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냈다. 5천만 민족의 염원과 바램. 이산가족의 슬픔을 덜어 주려는 모임과 전 세계 민족과 주의를 초월한 신의와 우정을 다짐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올림픽대회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이었다.
이는 남북이 한 민족임을 실감케 하며 인류가 한 가족임을 절감케 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 영원과 연결되기 바라면서 뉴스의 홍수 속에 적어도 신자들이 흘려넘길 수 없는 평양에서 나눈 강양욱 목사와의 교회ㆍ신앙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9월은 복자성월. 순교자의 달을 맞아 그들의 얼을 되새기며 순교자적인 자세와 정신을 이어받으려는 지금 북한 교회 이야기는 더없는 설교 주제와 묵상의 소재가 됨 직하다. 강양욱 목사와의 인터뷰 기사에서 먼저 박해받는 북한 교회의 실상을 확인하고 동시에 종교 불재의 철저한 유물논 공산사회와의 이데올로기적 대결을 실감케 한다.
그의 소극적이며 목사라는 전 신앙인으로서 괴로운 답변-『혹시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그의 발언이 아니더라도 행복한 희망을 품고 존 번얀의『나의 신앙과 주의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내 눈 속에 이끼가 낄 때까지 고통을 감수하겠다』한 수많은 신자가 있음을 확신한다. 왜냐하면 신앙은 의적인 강제에 강요되기보다 신앙은 박해 속에서 철저하게 그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 4백년에 걸친 초대교회의 박해는 물론 1세기에 걸친 한국 교회 역사는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日帝의 탄압 아래에서도 2천여 개를 헤아렸다는 교회가 지금은 자취를 감추었다 하니「종교는 과학과 진보의 적」「종교는 아편」이라는 마르크스ㆍ레닌사상을 철저하게 실천했다고 하겠다.
도대체『신의 존재를 안 믿을 수 없다』는 강 목사의 신은 어떤 신일까? 분명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은 아닐 것이다.
그의 신은 십자가를 외면한 이기적인 신 아니면 수난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예고할 즈음 베드로는 그런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할 때에 예수는 조용히『하느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테오 16ㆍ13) 하신 것처럼 그의 신은 영광의 전주곡으로서의 전쟁을 허용하는 신의 무한에 지혜를 갖추지 못한 무능력한 신임에 틀림없다. 신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킨 공산주의는 결국 인간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박탈하며 결국 인간을 국가라는 영원히 맴도는 수레바퀴 속의 비인간화한 하나의 톱니도 떨어뜨린다. 공동묘지로 비유할 수밖에 없는「세속도시」평양에 성스러운 인간 회복의 종이 울릴 날을 생각하며 강 목사에게 조용히 들려주고 싶은 말을 생각해 볼 수 없을까? 당신의 스스로 자부하는 신앙 앞에 당신의 신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소련 교회 운명은 전체 소련 국민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가 놓여 있습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있다면 소련에 있어서의 크리스차니즘의 부활 그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쓴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게 보낸 젤르코프 신부의 편지 한 귀절을 평양에 띄워 보낼 수 없을까?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