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의 대표적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저서 중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欽刑典書」「經驗痘方」등 10종과「經世遣表」등 친필 원본 14종이 최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되어 학계의 큰 관심사가 되고 있다.「欽刑典書」는 법률 행형에 관한 책이고「經驗痘方」은 어린이의 천연두 치료에 관한 책이며「經世遣表」는 다산이 스스로「一表二書」라 해서 자기의 대표적 저서로 자인한「經世遣表」「牧民心書」「欽欽新書」가운데 일표다. ▲지금까지 발굴된 다산의 저서들 중에는 그 당시까지 산업 방면의 저서로서는 처음인 임업관계의「山林經濟」도 있고「雅言覺非」라는 어류관계 해설책도 있으며 사상 학문 풍습 용어ㆍ사례해설을 백과전서처럼 엮은「곤鈍錄」도 있다. 다산은 약 5백 권에 달하는 책을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 학자 중 가장 많은 책을 남겼으며 도학과 가톨리시즘뿐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역사ㆍ지리ㆍ의학ㆍ음악에 이르기까지 해박한 지식을 가졌었다. ▲그는 당시 이벽 이승훈 등과 함께「天主實義」를 연구함으로써 실생활과 유리된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공리론을 탈피할 수 있었다. 천주교를 통해 서양의 과학 기술과 접촉할 수 있었던 그는 수원성을 설계, 기중기를 고안해낼 정도로 실생활에 유익하게 이용되는 여러 가지 학문에 심취했었다. ▲다산의 신앙생활은 세도정치의 추잡한 정권 다툼으로 빚어진 1791년의 신해교난과 1801년 신유교난을 겪는 동안 배교를 선언하고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818년부터 그는 배교를 선언한 죄를 뉘우쳐 묵상과 고행을 통해 반성한 바를「牧民心書」와「經世遣表」등에 표현했다. 그는 생에 대한 원시적 애착이 강했던「학자」로서 그의 집안 사람들처럼 피 흘려 순교하지 못했지만 불의와 야만에 대한 반골정신은 뚜렷했다. ▲그는 시「述志」에서『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치 주머니 속에 갇혀 있는 듯…언제나 사지를 펴지 못하고 큰 기상, 넓은 뜻을 채울 길이 없어라…뭇 바보들은 한 놈을 떠받들고 다 같이 숭상하라 고함 지른다』고 개탄했고『…이런 정치를 지금 개혁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나라는 망하고야 말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충신지사가 수수방관할 수 있겠느냐…』고 충동했었다. ▲다산이 그만큼 많은 연구와 저서를 낸 것은 도합 19년에 걸친 귀양살이의 덕분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산이 다시 귀양살이를 한다면 그는 우주와 인간의 역사 자체가 지닌 구원사적 의미와 우리가 처해 있는「시간」과「장소」의 신비, 그리고 정치ㆍ경제ㆍ문화활동이 구원의 경륜 안에서 지니는 위치와 의미를 깊이 묵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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