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나 적절한 때가 있다. 독서는 가을이 가장 좋다. 봄은 우리의 마음을 공연히 들뜨게 한다. 봄의 화창한 날씨는 처녀의 미소처럼 우리를 밖으로 유혹한다. 여름은 더워서 독서에 적합하지 않다. 여름은 산과 바다를 가까이 할 때지 책을 벗으로 삼을 때가 아니다.
독서에 가장 좋은 계절은 아무래도 가을이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추야장이라는 말 그대로 밤이 깊다.
가을의 맑은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게 한다. 가을은 누구나 사색의 충동을 느끼는 계절이다. 내 마음 자리를 한 번 되돌아보고 내 생활하는 자세를 조용히 반성해 보고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 검토해 보고 싶은 계절이다.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나무 잎사귀와 조석으로 서늘해지는 날씨와 풍성스럽게 익어가는 열매는 우리의 사색하는 자세와 충동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책을 안 읽으면 가을에 대해서 미안한 것 같다.
현대 문명은 우리의 생활에서 독서 기회를 점점 빼앗아 간다. 라디오 텔레비 영화 여행 등산 바캉스 골프 낚시 모두가 독서의 적들이다. 옛날 사람은 그런 것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독서에 보낼 수 있었다. 책은 인생의 가까운 벗이요 생활의 정다운 거울이요 정신의 다시 없는 양식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一日不讀書 口中生형극)고 고인들은 말하였다. 또 책 속에는 스르로 천만금이 있다(書中自有萬鍾祿)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책을 읽지 않으면 마음의 공허감을 느꼈던 것이다.
현대인은 책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정신은 갈수록 빈곤해진다. 우리의 마음은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사막처럼 황량해져 가고 있다.
정신은 부드러운 윤기를 잃어버렸고 생활은 여유와 향기와 보람을 잃어가고 있다. 현대인의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정신의 공동화ㆍ사막화ㆍ기계화ㆍ물건화라고 일컬는다.
우리의 정신이 정신다와지기 위해서 생활이 생활다와지기 위해서 우리는 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책을 읽어야 한다.
철학가 데까르트가 갈파한 바와 같이『독서한다는 것은 과거의 뛰어난 인물들과 보람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이것은 고전을 읽는 경우다. 우리는 현대의 탁월한 지성과의 대화를 독서를 통해서 가질 수 있다.
인생은 짧다. 조용한 시간은 특히 짧다. 우리는 될수록 양서나 명저를 골라서 읽어야 한다. 악서나 잡서를 읽어서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정신에 해독을 끼친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니라 우리는 책다운 책을 선책해서 읽어야 한다.
인생에는 현명한 선택의 원리가 필요하다. 독서에서는 특히 그렇다.
무엇을 읽는가를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성품과 취미를 판단할 수 있다. 독서는 곧 그 인간을 표현한다. 영화나 텔레비를 보면 그때는 재미나고 즐거운 것 같다. 그러나 보고 난 뒤에 별로 남는 것이 없다. 공연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후회만이 남는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렇지가 않다. 나의 정신적 우주가 확대된 것을 느낀다. 나의 마음의 밭이 풍성해진 것을 깨닫는다.
자아가 성장한 기쁨을 갖는다. 나의 심령의 세계가 맑고 깊어진 것을 발견한다. 나의 생활의 지혜가 풍성해진 것을 경험한다. 생의 용기를 되찾고 삶의 보람을 느낀다.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빵은 육체의 양식은 될 수 있어도 정신의 양식은 될 수 없다. 우리는 마음이 살찌고 정신이 풍성해지기 위해서 부지런히 독서하는 생활인이 되어야 한다. 충실한 생의 건설 보람있는 삶의 창조, 심화된 자아의 확립을 위해서 양서를 읽는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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