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9월 13일 반공을 국시로 내세워온 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라디오ㆍ텔레비가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가운데 공산주의자가 그 당을 선전하고 그 수령을 찬양하는 기상천외의 이변이 일어났다. 남북 적십자회담을「대대적인 사업」이라고 말한 북의 진의가「대대적」으로 밝혀짐과 동시에 남의 기대가 산산히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바로 그 장면을 라디오와 텔레비젼이 중계하지 못하게 예의 그 통제를 감행했더라면 어떻게 될 뻔했는가. 정말 아찔한 감을 금할 수 없다. 완전한 자유 언논이 회담 장면을 지켜보면서 국민의 알 권리를 채워 주고 그 감시적 기능을 다했기 때문에「건국 이래 가장 효과적인 반공교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북 적십자회담과 그 과정을 지켜보는 교회의 입장은 일반 국민이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교회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만으로도 시원치 못해 흔적조차 없애 버린 공산당이 아닌가. 교회가 저들의 과거와 현재의 소행을 묻지 않고 대화의 자리에 참여하려는 것은「원수를 용서」하는 교회의 정신과「대화」를 촉구한 공의회의 부르짖음 때문일 것이다. ▲대화에 참여한다고 해서 교회의 반공정신은 추호도 변함이 있을 수 없다. 가톨리시즘과 공산주의가 수화 같은 상극임은 세인이 공지하는바가 아닌가. 솔직히 말해서 공산주의 선전이 수도 서울에서 라디오 텔레비로 중계되는 상황을 보고 교회에 또다른 감회가 없을 수 없다. 교회 지도자의 충고 발언이 중계 도중에 중단되기도 하고 그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남북 적십자 서울 회담을 통해 언론의 알릴 의무와 감시적 기능이 자유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라는 사실과 모든 비리를 고발하는 자유 언논의 위대성이 증명되었다. 또한 공산당이 말하는 인도주의는「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의 인도주의와 개념상 상치됨도 명백해졌다. 더욱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은 우리 국민이 자유와 반공정신으로 무장된 민주 력량의 저력을 과시한 사실이다. 남북 적회담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감상적인 통일론을 내세우다가 우리의 귀중한 자유를 지금보다 더 위축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대화 있는「대결」을 한답시고 저들의 수법을 모방하는 일은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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