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처절한 민족적 비극이 한창이던 50년 12월에 군종제도가 창설된 후 23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군인을 대상으로 한 군 특수 사목활동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 왔다. 그동안 장교연합회가 결성되고 군종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9명의 문관신부로 첫 출발을 한 한국 군종 신부단이 이제는 40여명이 넘는 식구를 거느리게 되었다. 또한 신자들과 군인들에게 군종 업무의 필요성과 활동사항을 인식시키기 위해 68년도에 제정한 군인주일도 올해로써 다섯 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섯 번째 군인주일에 즈음하여 군사목에 관계된 많은 문제점 가운데서 특히 군종신부 선발 및 군종에 대한 교회의 관심문제를 잠시 돌이켜보면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시정할 것은 시정하고 넘어가는 것도 무익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군종제도는 군에 복무하는 신자 장병들의 사목과 일반 장병들에 대한 교육ㆍ상담 및 교회와 군대를 중계하는 교량적 역할의 수행을 그 목적으로 창설되었다. 따라서 그 사목 및 전교 대상은 60만 대군이다. 그래서 군대는 전교의「황금어장」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며 더구나 1ㆍ2년 전부터 군에서의 전군 신자화 운동이 맹렬히 전개되고 있는 군종신부의 숫자는 44명이다 (제대자 3명 제외ㆍ10월 말). 이것은 4백 명에 육박하는 개신교 군목이나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군승과 비교해서 우선 양적으로 좋은 대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체 신부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는 현 시점에서 지금 당장 군종신부의 수를 대폭적으로 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무리한 요구이다. 군종신부의 수적인 부족을 통감하면서도 그 증원을 강력히 요구하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회는 어떠한 원칙과 기준에 의해 군종신부를 선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준과 원칙은 과연 잘 지켜지고 있는가. 주교회의의 결정 사항에 따르면 각 교구는 교구 소속 신부의 10분의 1을 군대에 보내기로 되어 있다. 이것이 유일한 원칙이요 기준이다. 군종 선발에 대한 이러한일종의 약속은 많은 주교의 적극적인 협조로 좋은 성과를 보여오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지극히 비협조적인 교구도 없지 않은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그 결과 군종신부의 전체 티ㆍ오(TㆍO)는 54명인데 현재는 44명(곧 예편할 3명 제외)으로 10명이나 모자란다. 군종신부의 절대적인 부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더라도 최소한 티ㆍ오로 배정된 인원만이라도 채워져야 하지 않겠는가. 몇몇 교구의 이러한 비협조적인 태도는 부드럽게 표현해서 약속 위반이요 꼬집어 말하자면 이기적인 자기 고집이다.
그러면 이러한「약속 위반」은 어째서 생기는가? 그것은 우선 일부 주교의 군종에 대한 무관심과 비협조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다음으로 군종 선발에 관한 명확하고 분명한 각 교구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때문이라고 본다. 군종 선발에 비협조적인 몇몇 교구에서는 교구 자체의 딱한(?) 사정을 구실 삼아 군종신부의 차출적 자기 희생정신에 투철하다면 이러한 문제는 애초부터 생기지 않는다. 우리는 여기서 각 교구의 반성과 협조를 촉구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군종 선발의 명확한 기준과 제도가 하루 속히 확립되어야 하겠다. 분명한 기준과 제도의 불비는 석역치 않은 갖가지 부작용과 반발과불만을 잉태해 왔다. 예를 들면 같은 서열에 있는 신부들 중에 군복무를 필하지 않은 신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병으로 군복무를 이미 마친 신부가 다시 군대에 가야 하는 이중 복무의 경우 군에 입대하라는 교구장의 명령을 받고도 석연치 않은 핑계로 순명치 않는 경우 앞서 지적한 바 있는 일부 교구의「약속 위반」사례 등등 많은 모순과 부작용과 이기적인 구실들이 모두 분명한 원칙과 제도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데서 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군종 선발의 원칙이 제도화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흔한 경우는 아니겠지만 신부 개개인은 그들대로 군종되기를 꺼려하고 입대를 하더라도 마지못해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의무 복무 기간이 지나면 원에 따라 확실히 제대를 할 수 있다는 보장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는 것도 모두 군종 선발 기준이 제도화 되어 있지 않은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에서 군종 선발의 조속한 제도화를 촉구하면서 아울러 약속된 사항을 위반하거나 협조를 기피하는 교구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제의하는 바이다.
끝으로 군인주일을 맞이하여 전 성직자와 일반 신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군종활동에 보다 더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군인주일에는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군종신부와 현역 신자 장교들이 각 본당에서 군종 업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강론을 하고 군인을 위한 헌금을 걷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의 군인주일에 몇몇 본당이 보여준 비협조적인 태도는 실로 한심스럽고 통탄할 일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어떤 본당에서는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우거나 어떤 본당에서는 주교회의에서 인정된 교구와 군종신부단에서 보낸 공문을 받고도 신자 장교의 강론을 거부하는가 하면 군인을 위한 헌금과 그 주일의 헌금을 둘러싸고 그다지 칭찬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 본당도 없지 않았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군종 업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군종에 대한 각 본당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그리고 신자들의 성원을 촉구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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