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베리」대주교 마이클 램지 박사 부처 내한-교회에서 독신 성직자만 상대해온 가톨릭 신자이면 누구나 「대주교부처」라는 말에 어색하고 생역경함을 느끼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어느 성공회 신부가 신앙과 의식이 가톨릭과 같고 교황만 없을뿐 교계제도가 같은 성공회는 바로 가톨릭이라고 주장한바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던 그 순간의 심정과 지금 「대주교부처」가 주는 어감사이의 거리감은 어쩔수 없는것 같다. ▲이같은 거리감은 없애고 서로 일치하자는 교회일치 운동은 지난 1960년대부터 거세게 일기 시작했고 또한 상당한 진전도 있었다.
이번에 내한 「캔터베리」의 램지 대주교는 바로 이 일치 운동에 관심이 높을뿐 아니라 행동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도자로 부각돼있다.
어쩌면 「캔터베리」는 예부터 일치와 상당한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시인 초서가 지은 「캔터베리 이야기」에서 그것을 느낄수 있다. ▲ 「런던」「테임스」강 대안에있는「사우스와크」에서 546리 떨어진「캔터베리」의 순교자 묘소로 가는 순례길은 3박4일의 여정이었다. 이 순례단에 참여한 31명의 순례자는 시인 초서를 비롯 무사도를 존중한 역전의 용사, 철학서적 20여권을 머리맡에 갖고 있기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옥스포드 대신학생, 신발 한켤레 없는 과부에게도 돈을 거둬들이는 탁발사 법률가 지주 선원 요리사 상인 의사 여관주인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모두가 하나의 신앙으로 일치되어 순례의 길을 걸었다. 물론 영국교회가 교황의 통치권에서 벗어나기 전의 일이었다. ▲세계문화사에 의하면 영국 국교가 창립된 것은 1534년 당시 영국왕 헨리 8세의 이혼문제가 직접 이유였다. 과부인 형수 캐더린과 결혼했던 헨리는 교황의 허가 없이 캐더리과 이혼하고 안ㆍ불린과 결혼했으며「캔터베리」의 크랜머 대주교가 캐더린과의 결혼을 무효로 선언해 주자 교황은 헨리를 파문,「로마」와 영국은 완전히 결별하고 말았다. 그 후 헨리는 안ㆍ불린 왕비도 처형하고 다시 맞이한 4명의 왕비 중 1명을 처형, 1명과는 이혼했다. ▲이렇게 폭군다운 헨리도 영국교회 창립에 필요한 모든 절차는 의회의 동의를 얻어 합법적으로 추진했다. 이같은 절차엔 전제군주의 권력정치가 작용됐음이 짐작되나 세계문화사엔 의회의 동의를 얻을수 있었던 것은 국민과 이해를 같이했기 때문이라고 기록돼있다. 집권자는 교회의 재산에 군침을 삼켰고 특히 일반대중은 성직자의 세속화에 반감이 컸음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까지 지배하려는 전제군주의 탐욕에서 비롯된 교회의 분열은 어느덧 4배39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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