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10월 7일 대구대교구 보좌주교로 이문희 신부님이 임명되었다. 이날「로마」시간으로 오후에 결재가 내렸고 한국 시간으로 밤 늦게 입전됐다 한다. (토요일)
본인에게는 이에 앞서 내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서정길 대주교님께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본의아니게도 부재주교라는 말을 들어온 지 오래이다.
원래 주교는 종신직으로 천수를 다하고 주의 품에 안길 때까지는 주교이므로 앞으로 이 주교님이 서 대주교님의 보필을 잘 해나가실 것을 믿고 서 대주교님께서는 이 주교를 아끼시고 지도하시며 건강상 손이 미치지 못하는 점을 보완해 나가시리라 믿는다.
대구교구가 해방 전 3대의 주교님들을, 해방 후에는 3대의 주교님을 모시니 알찬 살림에 기반이 굳어져 있음직한데 한국의 모든 사정과 같이 지금까지 공 들인 일들을 밀어붙이고 오늘은 새로 출발해야 하는 딱한 사정이 교구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이 막중한 일을 약관 30대의 새 주교님에게 맡아 주십사 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감마저 돈다. 교구를 영도하는 일이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고 성신의 인도와 가호가 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에 큰 위안이 된다.
이 주교님은 출신 환경이 좋으시다. 누구나 다 아는 전국회의장 이효조 씨의 둘째 아드님으로 어려서 부모님의 사랑을 담뿍 받으셨고 학창 시절에 아무 부족을 모르고 지낸 분이다. 그만큼 세상을 얕보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기우이다.
또 이 주교님은 대부분의 성직자와는 달리 일반대학을 나오신 분이다. 한국 가톨릭의 지향할 바를 보는 각도도 다르리라고 믿는다. 주교만이 할 수 있는 직무나 또는 교회법에서 정해진 직권 등에 대해서는 평신도가 알 바 아니고 일반 사회인이 주교님을 어떻게 보며 무엇을 노리느냐를 생각해 보자.
부질없이 굽실거리는 무리는 경계해야 한다. 대가 회전의 주기를 엄청나게 앞당기는 것이 세속이다. 대가 회전의 주기를 늦추거나 말없이 기다리는 것은 그만큼 흉계를 꾸미는시간을 갖자는 것이다.
주교님이 대하시는 분이 교우일 때는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 주시고 편재편소에 앉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주교학이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복잡해졌다.
궁극은 성덕으로 감화시키는 길이겠지마는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쉽고 체력이 모자랄 것이다. 불과 10명 내외의 주교님들이 지난 30년 동안 겪은 여러 가지 사례가 산 교훈이 된다.
급변하는 사회 정세에 맞추어 나가기는 기대하는 편이 어리석을 것이다. 경제 변동이나 물가 대응 국제 정세 변동은 전문가도 어리둥절해지는 판국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연구기관을 두거나 권위자의 의견을 받아들일 아량이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 결정에 앞서 언제나 자문의 기회를 가지시도록 바란다. 주교의 목장이나 관이며 지환이 어디에 어떻게 쓰여져야 하나, 또 가슴의 십자가는 무엇을 표시하는가. 이러한 지극히 초보적인 일들이 때로는 요령부득인 사례가 간혹 있기 때문에 감히 우문을 터뜨린다.
품위가 우아하고 신사다운데 어딘지 모르게 찬 바람이 도는 지도자가 있다.
접근하기 힘드는 지도자도 있다. 이 주교님만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인력을 가진 지도자가 되어 주시기 바란다. 30대의 주교에 일하는 주교님이되셔도 늦지 않을 것이다. 교구와 주교님의 앞날에 풍성한 성우가 내리시기를 기원한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