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문「安」자를 풀어보면 여자는 집(富)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는 것이 동양의 생활 철학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하룻밤 사이에「돌변」이 연발되는 상황에선 비단 여자뿐 아니라 남자도 집안에 있을 때가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다. 포근하고 아늑한 보금자리에 있으면 우선 길바닥을 메운 차량의 배기까스와 소음을 못 느껴서 좋겠고,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불안스러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 좋을 것이다. ▲ 그러나 집 안에 있어도 도무지 포근하고 아늑한 기분을 못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내집을 갖지 못하고 가졌다 해도 은행에 저당 잡혀 있는 대도시의 서민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특히 전세집이나 사글세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수도세 전기세 오물세 야경비 등등 각종 잡부금을 주인보다 많이 물면서도 눈치삶을 살아야 한다. 계약 기간이 지날 때마다 오르는 화를 부담 못하거나 집이 팔려 버릴 땐 변두리에 전봇대처럼 많은 복덕방을 기웃거려야 한다. ▲ 셋방은 풍우와 한서를 막는 원시적 구실도 제대로 못하는 것이 많아「사람 살 집」찾기가 또한 힘들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삿날을 약속해 놓고 전셋돈을 제때에 받지 못하거나 점장이 척일까지 끼어들어 약속된 날짜가 갑자기 변경될 때는 이삿짐을 싣고 우왕좌왕하는 소동과 낭패가 생긴다. 이렇게 갑의 위약으로 생긴 피해는 을에서 그치지 않고, 을은 병에게, 병은 정에게, … 피해를 주어 그 피해는 일파만파로 뻗어 나간다. 이른바 CHAINOF ACTION(행위의 연속)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 셋방살이 서민의 조그만한 위약이 일으킨 피해 파장에서「계약에 의한 사회적 연대관계가 강한」현대 사회의 특징을 절감할 수 있다. 일개 서민의 경우가 이럴진대 단체나 사회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약속을 어기거나 위약을 가능케 함으로써 발생할 혼란의 규모는 불문부지다. 교회의 지도자 편에서는 고뿔 정도의 위약에 불과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은 모두가 심한 기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설사 심한 기침을 한다고 해서 위안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계약이 위약 없이 실천되는 과정을 기록한 성서가 있지 않는가. 거기에는 위약으로 남을 낭패케 하는 일이 없고 오직 묵직한 신의와 전신을 전율케 하는 사랑이 생동하고 있다. 성서는 통해「구원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믿고 믿으면서 바라고 바라면서 사랑하도록」노력하는 가운데 인간이 안주할 곳은 역시 하느님의 집밖에 없다는 신앙을 더욱 굳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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