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심하게 삐걱거리고 있다. 시국이 불안하게 휘청거리고 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불안정국 때문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공안 정국의 먹구름이 정치를 어둠속으로 몰아 부쳐버렸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요즈막에는 자꾸만 역사가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역사는 꼭 전진하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정체하고 또 때로는 후퇴하기도 한다. 우리의 역사가 후퇴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다. 일제 36년의 암담했던 역사가 그랬고, 남북분단의 비극적 상황을 연출했던 6. 25와, 이 땅에 군사문화를 심었던 5.16등은 분명후퇴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동학농민전쟁, 4.19며 5월 광주항쟁 등은 발전의 역사가 분명하다. 이렇듯 역사는 국민의 주권이 강화될 때 민중의 힘이 강해질 때 발전이 계속되며, 이와는 반대로 민권이 약해는 대신에 소수 권력집단의 힘이 강해질 때 역사는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정국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도 역사는 후퇴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은 지난 6월 항쟁과 6. 29선언, 그리고 국회청문회를 지켜보는 동안만은 오랫동안 정체되고 후퇴를 거듭하고 있던 우리역사가 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땅에 민중의 힘이 강화되고 5공 청산과 광주문제가 곧 해결될 듯한 기대를 갖게 하였다.
그러나 중간평가 연기론이 나오고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 서경원 의원 입북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부터 공안정국이 정치권을 무력화시켰고 이제 5공청산과 광주문제해결, 그리고 민주화 실천은『물 건너 가버린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국민들은 참으로 현기증을 느낄 정도로 끔찍한 사건들을 연달아서 겪어야만 했다. 동의대 사건이 그렇고 광주 이철규 사건이 그랬으며, 영세민의 생존권이 걸린 노점상 강제철거와 분신, 참교육을 실현하겠다고 나선 교원노조의 결성과 잇달은 해직사태가 그렇다. 그런가하면 수많은 인명과 엄청난 재산을 앗아간 영호남지역의 대홍수와 태풍피해와 대한항공여객기 사고 등 대형 사고가 공안정국과 맞물려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불안한 정국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역사발전이라는 레일 위를 달리던 민주화의 열차가 왜 갑작스럽게 궤도이탈을 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정치인들이나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가장 큰 책임은 역시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6공에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문익환 목사의 방북사건이 왜 생겼는가를 우리는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7.7선언은 분명히 국민들 가슴속에 두꺼운 장벽으로 얼어붙어 있었던 남북교류에 대한 희망을 되살려주었으며 통일의 필연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확대시켜주었다. 그리고 가시적으로 북방정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정주영회장의 방북은 국민들의 기대를 잔뜩 부풀려 놓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공안정국의 소용돌이는 7·7선언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데서 비롯된 일이라고도 할수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분명 유엔에서 7·7선언을 하였으니, 정치권에서 즉각적으로 후속조치를 취했어야했다.
이렇듯 세상이 걷잡을 수 없는 먹구름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닫고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6공화국이 출범시 약속과는 달리 점차 민주화의 실천의지가 희박해진 탓이다. 민주화의 의지가 있다고 해도 지금껏 가시적으로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5공청산과 광주문제해결을 어떻게 하면 뒤로 미룰 수 있을까 하는 궁리를 짜다보니 민주화가 자꾸만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야당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3대국회가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여소야대의 의회정치의 회복을 기대했었다. 3야당의 공조체제만 잘 이루어진다면 얼마든지 여당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고, 여당의 독주를 건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3야당의 색깔이 분명하게 노출되고 또한 당마다 당리당략에만 급급한 나머지 언제부터인가 공조체제가 심하게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처음부터 3야당의 공조체제를 회의적으로 보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것은 5공화국의 주체세력들이 비록 당을 바꾸었다고 해서 진정한 야당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는냐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우려는 들어맞았다. 이제는 색깔론까지 들고 나온 판국에 이들 3당의 공조체제는 국민적 기대는 뒷전으로 미루고 우선은 당리당략을 위해 운신하게 될 공산이 더욱 크다. 이들 3당은 이미 정국수습을 포기해버린 것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국의 안정을 위해 3당이 진정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랄뿐이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공안정국의 기류를 지속시켜주고 있는 것은 언론의 책임도 크다고 할 수가 있다. 모기관에서 일부러 흘린 미확인정보를 연일 대서특필하여 여론재판를 방불케 한 언론의 매도는 마땅히 지탄받을 만하다. 진실보도와 공정보도는 확인보도에서만이 가능한 것인 데도, 언론에서 먼저 경쟁적으로 정국을 불안국면으로 유도한 듯한 느낌이었다. 5공의 제도언론이 권력에 밀착하여 역사를 후퇴시키고 독재를 연장시킬 수 있도록 했던 잘못을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불안정국은 빨리 수습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하루바삐 정치권이 회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민들 마음속에서 불안과 불신을 씻어주고 역사발전이라는 레일 위로 민주화라는 이름의 열차가 다시 달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우선 국회부터 문을 열고, 사법적인 처리이전에 정치적으로 해결할 것은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지혜를 보여줘야 한다. 야당은 국민적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공조체제를 이루어야 하고, 여당은 이럴 때 정치적 도덕성을 보여줘 국민들로 하여금 신뢰를 되찾아야하며, 언론은 냉정하게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자기위치에 바로서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역사는 다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집필해주신 성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8월 한 달은 작가 문순태씨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문순태(작가·프란치스꼬)
◇1941년 전남 담양 출생
◇조선대 국문과, 숭전대 대학원 졸업
◇대표작 「징소리」 「타오르는 강」 「문신의 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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