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이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순례의 길에 올라, 성지를 찾아본다는 큰 기대 속에 온몸을 맡기고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일본을 거쳐 필리핀에 도착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공부하셨던 곳을 돌아볼 때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성인께서 공부하시다 머리를 식혔는 망고 나무가 아름으로 세 아름되며 무더위에 즐겨 찾으시던 연목이 세월이 지나 지금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공부하시던 자리는 개인 소유이나 동상의 자리를 마련하여 주셨던 백발의 할머니. 미사시간이면 꼭 함께 참례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찌 그리 인자하신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한편 90% 신자인 마닐라 시가지는 왜 그리 지저분하고 질서가 없는지 유리창이 없는 차량들, 아무거리에서나 차를 타고 내리며, 껌, 담배, 신문, 꽃 팔이 아이들은 차량이 신호개기 중에 뛰어들어 차량 사이를 다니며 팔려고 애를 쓰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어디서도 찾아보지 못할 이야기 들이다. 여러 나라를 다녀 보았지만 가톨릭 국가가 아니더라도 말끔히 정돈하여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도 깔끔하기만 하였다.
그런데 가톨릭 국가이면서, 왜 이럴까? 나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더 깊이 있게 시가지를 보았다. 빈부의 격차가 심하지만 이 나라는 하느님의 축복인 나라가 분명 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거나 시기하지 않으며, 마음들이 태평이었다. 그 사람들은 하루 일한 몫이 우리나라로 보면 1천 원 정도라고 한다. 그 하루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1천원은 필사적으로 벌어야하기 때문에 앞뒤 가리지 않고 결사적으로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일 걱정은 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 나라 국민성을 단적으로 보면 운전기사가 손님을 태우고 차량을 운행하다가 잠이 오면 길가 그늘아래 차량을 세우고 잠을 잔다고 한다. 그러면 그 차에 타고 있던 손님들은 불평하나 하지 않고 다른 차로 옮겨 타고 간다고 한다. 정말 무질서 속의 질서로 느껴진다. 여기서 이 땅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의 땅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길거리 가로는 야자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으며 넓은 땅은 일 년에 3모작이 가능하여 언제라도 씨만 뿌리면 거둘 수 있는 기름진 땅들이 그냥 풀밭으로 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시 정리하여 본다. 일용할 양식 외에는 욕심이 없고 누가 부자이든지 마음 쓰지 않으며, 오늘 하루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민족들이라 하겠다.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아름다워 보이고 높이 솟은 빌딩들도 잘 났다고 뽐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각박하고 당장이라도 무엇을 뺏어 갈 것만 같은 나라들이었다.
마닐라시는 순수하고 좀 모자라 보일 정도로 마음에 들며 정이 가는 시가지임이 틀림없다. 바로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고 살라가는 이곳 주님이 함께 계신다고 나는 믿고 싶다.
나도 이번 성지를 순례하면서 순박하고 자신이 희생하는 생활로 바뀔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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