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원 의원 간첩혐의 사건, 임수경양의 평양 밀파사건 등 그들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 때문에 한국천주교회가 함께 싸잡혀 국민의 지탄을 받더니, 이번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의도적으로 현행법을 무시해가며 문규현 신부를 그들의 대표로 입북시켜, 그 결과로 교회내의에 엄청난 파문과 충격을 던졌다. 서경원 사건과 임수경 사건은 비록 그들이 천주교 신자라 해도 개인문제로 돌릴 수 있지만 이제 16명의 사제들이 결의를 해서 문 신부를 평양에 밀파한데 대해서 교회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당국의 사법적 처리나, 빗발치는 여론의 지탄 앞에 교회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주교단 까지도 대국민 사과문에서 이 사건은 『충격스런 일이고, 마땅한 행동이 아니다』라고 시인하면서 그들이 비공인단체이지만 천주교 신부의 단체이기에 유감과 함께 책임을 느낀다고 하였다.
이번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느끼는 근본적 문제는 교회기강이 이래서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내 급진세력들은 교회법과 권위에 도전하는가 하면 이번 사제단의 행동은 선의의 신자들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겨 주었다. 참으로 암담하다. 주교단은 사과문 하나로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줄 안다. 순진한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오늘까지 사제들의 말이면 하느님의 말씀이고 교회의 말이라고 믿고 따른 것이 사실이다. 이제 이 순진한 신자들에게는 어떤 사제의 말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놓았다. 또 많은 사제들의 체면은 무참히 짓밟혔다. 이러고도 교회 기강이 바로 섰다고 하겠는가? 정의구현사제단의 말이 따로 있고, 교회의 가르침이 따로 있어도 된단 말인가?
이러한 현상은 이번의 사건으로 부각된 것뿐이지 사실상 그 싹은 1974년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것이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다. 특히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주교님들과 주교단이 오늘까지 이를 방치해오다가 오늘에 와서 국민 앞에 사과를 하기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한국 교회의 망신이요 주교단의 권위상실 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통탄할 일이다. 외람되나 본보를 통해 감히 주교님들께 이런 고언(苦言)을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도 그러한 좌절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제들의 말을 무조건 따른 것은 그만큼 그들이 주교님들의 교도권에 충실한 신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땅의 신자들은 누구를 믿고 따라야 하는지 당혹과 암울함을 감출 수 없다. 구심점을 잃은 심정이다. 임수경 아버지가 딸자식 잘못 가르쳐 미안하다고 국민에게 사과문을 낸 것처럼 주교단 또한 사제를 단속하나 제대로 못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중대한 일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이 땅의 신자들은 왜 주교님들이 일찍 사제들에 대한 교회기강을 바로 세우지 않았는가 하고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판단력이 잘못된 사제들 때문에 그들을 따르는 잘못된 신자들 단체가 형성된 것도 주교님들의 지도력 결핍에서 라고 생각하면 잘못일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분명히 하지 않으며 안될 일이 있다. 그 첫째는 다양성 논리의 편증이다. 공의회는「일치 안에 다양성」원리를 정립하였으나 한국교회는 이 원칙에 충실하지 못했다. 일치를 무시하고 다양성에 편중하였기에 오늘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다. 70년대의 주교단의 보습은 과연 어떠했던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출발을 묵인하고 영웅시했던 주교님들의 처사는 오늘의 결과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일치가 아무리 어려워도 이제부터는 다양성 보다 일치의 우위를 재확인하면서 재출발 하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교회도 어른이 있고 선배가 있고 동료가 있고 후배가 있는 법인데 사제들 중에는 이러한 관계를 왜 무시해왔는가, 즉 교회 안에 생긴 위화감을 왜 묵살했는가?
다음은 주관적 양심의 초법성(超法性)문제이다. 1974년 모 주교님의 양심선언 이래 양심선언이 유행처럼 되었고, 이제는 툭 하면 신앙적 양심과 목자적 양심의 이름으로 초법적(超法的)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가톨릭이 어떤 신학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단 말인가? 신앙과 하느님의 법에 배치되는 법에 한해서만 양심법의 우위를 인정할 뿐이다. 그 외의 양심 문제는 개인과 하느님과의 관계에만 해당된다. 개인의 마음에 안 든다 해서 양심적 확신만 가지고 모든 법에 우월할 수는 없다. 이것은 교회 상식이고, 사제들의 상식이다. 그런데 이런 상식이 왜 묵살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이것은 윤리신학의 중대한 문제이고 사제양성의 책임자인 주교님들이 재고하셔야 할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사제들 중에 있는 영웅주의가 그것이다. 지난 날 사법적 처리를 받은 사제는 반대로 교회 안에서 영웅시 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건에 관련된 사제들이 또다시 교회 영웅으로 인정받는 일이 생기지 않을 런지 지켜 보려한다. 주교님들이 모든 사제를 자부적으로 자기 품에 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단순히 억압받았다거나 사제라는 이유만으로 영웅시하는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라 하겠다. 신앙과 도덕의 이유로 박해를 받았다면 경우는 다르다.
결론적으로 이제부터 교회기강은 바로 잡아야한다. 교회질서와 법규준수의 풍토가 시급하다. 이러한 교회기강의 확립은 교회 교도권의 책임인줄 안다. 오늘 교회내부에서 일고 있는 급진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도전을 해오고 있다.『목자들이 잠자고 있으니 개라도 짖어야 하지 않느냐?』무서운 망발이 아닐 수 없다. 안일하게 넘길 때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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