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꺼진줄 알았던 불은 조그마한 불씨로 인해 다시 살아나고 말았습니다.
마음의 갈등속에서 형의 설득에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삶을…
나 대로의 안정되리라고 생각하는 길로 나왔지만 삭막한 서울거리는 별빛만 깜빡일뿐 쓸쓸하기만 했습니다.
다시 식당에 취직해온 지도 한달.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내 마음은 공상에 사로잡혀 갈피를 잡을수 없었습니다. 난 다시 영원히 잊으려 했던 고향이 그리웠습니다. 난 발길을 옮기었습니다.
항상 붐비는 상동칸 열차, 근 4년만에 와보는 고향역은 마냥 쓸쓸하기만 하고. 모든 괴로움을 되씹으며 눈물 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때도 하얀눈이 오솔길을 덮어놓았습니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나의 볼엔 두줄기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슬픔을 하얀 눈 위에 떨구면서 집앞까지 갔습니다. 조용하기만 한 나의 고향집,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산에 올라가 잔디 위에 앉자 따스한 햇살이 나에게 원망했습니다.
『무엇하러 왔냐? 미련도 원망도 모두 버리고 빨리 내려 가거라. 넌 지금 갈 곳도 없지 않느냐?』얼마 후 난 역으로 나왔습니다.
오가는 사람은 많건만 날 반겨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열차는 플랫품을 빠져나와 철길을 따라 질주해갑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올바른 가르침이 없었습니다.
열차는 대구역 홈에 들어섰습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내려 시내로 나왔습니다.
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고 오가는 사람 모두가 행복하게 보이는데 나만은 왜 이렇게 방황해야 하는지?
나는 이리저리 헤매었습니다. 그러나 낮선 땅엔 낯선 사람만 오갈뿐, 배가 고파왔습니다. 그리고 자꾸 어둠이 깔리어 오로지 따뜻한 아랫목 생각만이 간절했습니다.
걷다보니 대신동 서문시장까지 왔습니다. 시장엔 사람들이 바쁜듯이 빠른걸음으로 분주히 왕래했습니다. 저마다 정해진 직장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버스정류장엔 상품보다리가 이곳 저곳 놓여있있습니다. 그때 전 모든 사회를 망각하고 완전 범죄라고 자인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었습니다.
주인의 눈길이 보따리에서 떨어질때 나의 손은 벌써 보따리를 쥐고 늠늠하게 몸으로 커버하며 주인앞을 지나 길 건너편으로 건너가서 골목으로… 마치 내 물건인양 주위의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서 발길이 닿는데로 갔습니다.
또 다시 손대고 말은 나, 그 물건을 칠성시장의 장물아비에게 넘겨주고 1만3천원이란 돈을 손에 움켜쥐었습니다.
이젠 모든 일시의 고통을 잊고 배부르게 먹고 부산가는 특급열차 속에서 내 정신은 마냥 알콜에 마비되어 그대로 골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눈을 떠보니 다 나간 열차속에 나만 혼자 있었습니다.
골이 아프고 속이 쓰렸습니다. 역에서 나와 옛날 범죄소굴로 갔습니다. 그들은 반갑게 맞아주며 그동안 사정이 있어서 못 찾아갔다느니 등 이리저리 핑계를 대었습니다.
그러나 난 당장 갈 곳이 없었기에 그곳에 육신을 맡기고 말았습니다. 나라는 인간이 사회에서는 쓸모가 없었지만 범죄의 테두리 속에서는 왕초들이 빠른 동작과 범죄수단이 발달한 나를 서로 노리며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또 나는 옛날있던 김씨 집에서 있기로 했습니다. 옛날보다 대우가 좋았습니다. 양복에 시계ㆍ구두 그리고 주머니엔 항상 5ㆍ6천원은 넣어주었습니다.
나는 또 발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젠 부산에만 있는게 아니라 서울ㆍ대전 대구 등지 대소도시로 원정까지 다니며 범죄를 했습니다. 하루 일을 마치면 공범들과 맥주홀로 돌아다니며 돈을 물쓰듯이 쓰고 여관 골방에서 밤새워가며 화토장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최고 향락으로 알고 생활했습니다. 낮의 불안과 밤의 향락 이 속을 매일 전전하면서 내일을 기약할수 없었던 나의 생활. 그러나 마음은 항상 불안하고 시간이 감에 따라 초조했습니다. 이런 생활로 그때는 사회에 대한 죄책감을 조금도 없었습니다.
우리 팀이 부산서 대구로 옮긴지도 한달이 넘었습니다. 가끔 부산에 원정갈 때면 다시 부산에 있는 불쌍한 동생 영순이를 찾아가 용돈도 주고 옷도 사주곤 했습니다.
그 당시 아쉬운 것이 없었지만 도둑질한 돈을 동생에게 주기는 하나 마음 한 구석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어리고 연약한 동생은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면서까지 참되게 살려고 하는데… 난 왜 도둑질을 안하면 안되는가? 하고 생각했지만 깊이 파헤치고 진실를 깨우치지 못한채 한가닥 양심의 소리를 말살하고 괴로운 가슴속을 알콜로 마비시켰습니다. 동생한테 갈 때마다 직업을 묻지만 난 모든 것을 숨기고 상점 점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마다 동생은 『오빠 사치하지 말고 돈 벌어서 우리도 남과 같이 한번 살아봐』난 『그러마』하고 내빼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난 갈 때가 없었습니다. 동생한테 가기로 하고 부산으로 내려와서 그날도 우리는 양과점에 들어가 마주앉아 몇시간을 이야기한후 헤어졌습니다.
그 후 며칠후 또 시련을 겪고 말았습니다. 경찰서에서 왕초의 시키는대로 한 건의 사건을 단독범행이라고 끝까지 부인한 끝에 난 교도소로 넘어갔습니다.
성장한 나는 교도소가 어떤 곳이라는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들어가보긴 처음이었습니다.
캄캄한 통로를 따라서 마치 지옥같은 무서움을 느끼며 철문이 열릴 때마다 특유한 금속성의 음향이 처음 들어가보는 사람들의 간을 썰렁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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