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는 순간부터 늙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연원칙이니 만큼 누구도 이것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늙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젊고 혈기가 왕성한 청년과 장년시절이 지나면 육신이 쇠약해지고 그 육신의 활동의 폭이 좁아진다. 이것이 늙는 것이다.
그렇다면 육신이 쇄약해질 때 정신도 쇄약해지는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육신에 반비례해서 정신적으로 더 강해질 수도 있고 오히려 정신의 활동 범위가 더 넓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늙기도 전에 늙어버린 늙은 젊은이보다 더 젊은 젊은 늙은이가 있다.
그러나 육신으로 볼 때 늙는다는 것은 남에게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 풍습에 장자는 노부모를 보양해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들로서 노부모를 보양한다는 것은 한편 부모에게 받은 생명의 은혜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는 영광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생 교회를 위해서 결혼과 따라서 자녀를 포기한 사제들의 노후문제는 어떤가? 사제가 아직 젊었을 때에는 얼마나 열성 있게 복음을 생활하고 전하는가에 문제가 있지 생활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줄 안다. 오히려 한국의 사제들의 생활 수준은 중류 이상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사제는 늙으면 의지할 곳 없이 외롭고 쓸쓸해지는 줄 안다. 그래서 한국 교회 내에서는 심심치 않게 사제 노후 대책문제가 거론돼 왔고 또 거론되고 있다. 어쨌든 이 문제는 심각한 문제이다. 더구나 젊은 사제가 자신의 노후를 걱정해서 복음을 선포하는 사제생활 중에 금전에 애착을 가진다면 그의 사제생활은 본연의 뜻을 상실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내가 늙으면 자신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으니 돈이나 모아서 편안한 노사제의 생활을 보장해야지 더구나 사제가 늙어서 돈이 없으면 혼하게 되니 사제의 위신을 생각해서라고 오늘부터 돈을 모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의 구실로 사용된 노후 대책문제가 나중에는 돈에 대한 애착으로 변하고 금전 관계로 인해 신자들과 사제 간에 불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사제 노후에 대한 대책을 마련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원교구는 지난 12일에 열린 사제총회에서 은퇴사제를 위한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확보 기금의 액수를 1천만 원으로 정하고 앞으로 5년 간 각 본당에서 1년에 한 사제의 생활비에 해당되는 금액을 교구청에 납부하기로 했다. 교구적 단위에서 이와 같은 사업을 추진한 것은 대단히 좋은 일이다. 또 어떤 교구에서는 사제가 서품되는 날 1만 원을 은행에 예금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은퇴하는 날 그 예금과 이자를 받도록 한다고 한다. 또 일본에서는 은행과 계약을 맺어 연금제를 실시한다고 한다. 모두가 다 사제 노후를 위한 대책 방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를 교구적 단위보다 전국적 단위로 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그 첫째 이유로서는 교구 단위로는 재정적으로 약한 교구는 실제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며 둘째 이유는 이 문제는 사제 전체에 관한 것으로서 모든 교구가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또 이것은 사제들에게 균등한 대우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제 노후대책을 원칙적으로 환영하면서도 교회 내에 이 문제가 야기된다는 것은 교회의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로 이 문제는 물질만능주의의 소산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제 노후대책은 돈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복음적이 아니다. 노사제에게 필요한 것은 돈보다 정이고 관심이고 사랑이다. 사제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을 받고 하느님의 은혜를 받은 신자들이 그 사제가 늙은 후 일체 무관심으로 지낸다면 도대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의 공동체인 하느님의 백성이 무정하기 짝이 없고 서로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정말 교회가 사랑과 믿음의 교회였더라면 이러한 문제는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제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일생을 하느님께 바친 사제가 노후를 걱정한데서야 되겠는가? 가난을 선포하고 봉사를 실행하는 사제는 모든 것을 특히 노후를 하느님께 맡긴 사람일 것이다.『당신이 주셨고 당신이 거두셨으니 하느님께 영광이 있어지이다』한 욥의 말이 사제생활을 지배할 때 비로소 그는 하느님의 사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교회 당국과 특히 교구장들은 자기 교구 내의 사제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이 교구장을 믿고 자신을 완전히 맡길 수 있을 만큼 자부적 관심을 사제들에게 나타내 주어야 할 것이다. 사제가 개별적으로 자기의 노후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교구장에게 대한 불신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제 노후대책을 모색할 때 한 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보다 사제들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문제는 올바로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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