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어만 가는 가을볕을 받으며 늦가을 숲 속을 거니노라면 발 밑에 수북이 쌓인 단풍잎이 두툼한 솜이불 위를 거니는 양 포근하기만 하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수많은 시인들은 인생의 무상을 노래했고 이것을 느끼는 사람마다 가을은 슬픈 계절이라고 소녀 같은 감상에 젖는 것 같다. 그러나 비록 한 잎의 낙엽일지라도 떨어지면서 우주의 최대의 법칙의 하나로서 충만한 뜻을 지니고 있다. 낙엽은 떨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낙엽은 자기를 달고 있던 그 나무를 위해 썩어 가고 있다. 낙엽은 자기의 때를 알았고 이제는 더 이상 그 나무에 붙어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말없이 자리를 양보하고 더 큰 생명을 위해 미련 없이 썩어가고 있다. 미풍에도 자기 때를 느끼고 떨어지는 낙엽은 고독한 것도 쓸쓸한 것도 아니다. 다만 새로운 생이 준비되어 가고 있는 목소리이며 더 큰 생명의 모태를 위한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가정이나 교회에 있어 아쉬운 것은 후대를 위해 미련 없이 썩어 가는 그런 희생이 아쉽다. 자기 일신만의 안락을 위해 자식의 생명도 거침 없이 떼어 버리는 몰인정한 부모에서부터 눈 앞의 이익만을 위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를 음식을 만드는 부정식품업자와 국가 망신을 시키는 악덕 수출업자 사회나 단체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후배를 키우고 후배를 위해 거름이 되어 주기보다는 자기 당대의 영광만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잎 낙엽의 교훈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의 것이지 나의 것만이 아니다.
역사는 내가 없어도 계속된다. 그러나 한편 역사는 나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새 역사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리고 새 역사는 하느님의 역사이다. 역사 안에서 나의 사명을 깨딛고 그것을 위해 헌신함과 동시에 때를 따라 다시 더 큰 생명을 위해 거름이 될 각오가 필요한 것이다. 낙엽은 자기가 무성한 신록으로 있을 때보다는 거름이 되는 때 자기 희생의 극치에 이르는 순간이며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떨어져 바람에 뒹구는 낙엽으로 감상에 젖기보다는 발 밑에 밟히고 말 없이 썩어 가는 낙엽에서 내일의 희망을 볼 줄 아는 마음이 무엇보다 아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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