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에 대두된 국제적 신시운동의 주동자요 미국이 낳은 20세기 최대의 시인인 에즈라파운드가 1일 밤 이국 땅 이태리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영미문학사를 보면 20세기 전반기의 문학에 미친 파운드의 영향력, 특히 걸작「황무지」를 지은 T. S. 엘리어트와 심리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등을 길러낸 그의 업적은「현대 문학의 스승」이란 존칭에 조금도 손색이 없다. ▲파운드의 영면 소식이 외신으로 전해지자 국내 신문들은 한결같이 그의 업적과 생애를 소개하기 위해 지면을 크게 할애했다. 파운드를 소개한 기사는 또한 한결같이 그의 생애가「영욕의 생애」임을 지적하고 있다. 옥에 티가 있듯이「시단의 거본」에도 욕이 있었다. 그는 2차대전 중 이태리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에 협력, 무솔리니의 군사 독재와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찬양하는 파시즘 선전방송에 직접 참여한 것이다. ▲파운드는 종전을 2년 앞둔 1943년에 전범자로 체포되어 정신이상자란 진단을 받았지만 그가 이 같은 일생일대오점을 남긴 것은 정신병 이전의 유인이 있었던 것 같다. 해밀톤대학을 졸업하고 펜실바니아 대학교에서 문학석사 학위까지 받은 그가 조국을 등지고 세계를 집으로 한 코스모폴리탄이 된 것은 미국의 얄팍한 문화전통과 저속한 상업주의 문명에 대한 협오감 때문이었다.▲이유야 어떻든「현대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가 하필 파시즘을 찬양한 처사를 인간 파운드에 치명타를 준 망발이었다. 파시즘 선전방송에서「미국은 전체가 정신병 환자 수용소」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그가 바로 정신이상자였다는 사실은 또한 심한「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그 같은 방송을 했다면 조국을 정신병 환자 수용소로 만든 공동 책임으로부터 자기 자신의 알리바이를 주장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이 점에서 대조적인 문학가는 하인리히 뵐이 아닌가 싶다. 그는『아담 너는 어디 가 있었는가?』라는 물음에『녜 저는 세계대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여 무의미한 전쟁에 협오감을 절감하면서도 전쟁의 책임으로부터 자기 자신 의「알리바이」를 주장하지 않았다. 뵐은 전쟁과 전시 체제하에서 잃어야 하는 자유 독일과 자유 독일이 낳은 문화의 상실을 가장 가슴 아파했으며 전후에는 문화의 재건에 정열을 쏟았다. 그는 자유 독일에 충실하였고 자유 독일에 참여하였던 것이다. 파운드는 87세의 장수를 누렸고 뵐은 노벨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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