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평신도 사도직의 활동이 1968년 7월에 전국적인 기관으로 그 중앙협의회가 결성됨으로써 본궤도에 오른 것이고, 뒤이어 각 교구의 그 하위 기관인 교구 단위의 협의회가 결성되고 서울대교구의 예로서는 각 본당 단위의 협의회의 조직이 추진되던 터이다. 특히 서울대교구의 동협의회는 그동안 눈부신 활동이 있어 거둔 성과는 참으로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고 하겠다. 일부 인사의 열열한 활동과 해외에서 이에관한 새 지식을 가지고 귀국한 몇 분의 신부님의 강의로 그 계몽운동은 아연 활기를 띠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다섯 돌을 맞이한 중앙협회는 황 주교님을 총재로 받들고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며 서울대교구의 협의회가 해체에 봉착한 이 마당에서 앙협의회와 각 교구의 협의회의 활동에 기대되는 바 더욱 크며 연구로 학적 심도를 더하고 조직적인 활동으로 한국 천주교회에 새로운 이바지가 될 것을 기구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평신도 사도직 운동의 발족은 주지의 사실과 같이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양대에 걸친 공식회의 결정으로서 천주교회의 혁신적인 전기가 마련된 것인데 율령과 그 해설서로 누구나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금의 세웅는 잠시도 방심할 수 없는 상태이어서 물질 숭배의 사조가 인심을 마비시켜 가고 있고, 반종교적인 세력이 날로 더해가고 있는데 교회는 전일과 같은 보수와 고식에서 맴돌고 있을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공식회의 론난 도중 영명하신 교황께서 창을 여시면서『천주교회도 공기를 바꾸어 넣어야 해…』의 일언이야말로 우리의 심금을 찌르는 말씀이다. 일례로 장래의 교회를 짊어질 청년들의 동웅에 눈을 가려서는 아니 된다. 구질서에 도전하여 몸부림치는 히피사상이 이미 반항적인 태도와 무리의 설교에 흥미를 잃는 듯한 언행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서울시내 각 대학의 가톨릭 신자인 학생은 8천 명이라고 하는데 미사에 참예하는 비율은 30% 미만이라고들 한다. 물론 이 집계의 신빙성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학에서의 모임에 출석자가 근소함에서 그들의 신덕의 열도가 날로 냉각하고 있음을 솔직히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는 곧 시대적인 반종교적인 사상의 침투의 소치가 아닌가 우려하게 된다. 이 마당에서 신부 일인이 시대적 양상과 대결할 수 있는 것인지는 자명한 일이다. 여기서 평신도 사도직의 재인식과 그 협력에 기대되는 바 크다. 이제는 독소를 품은 세파에 대해서 신부의 역량이란 뻔한 사실이며 무사주의와 고식에서 만족하는 날 내일의 천주교회는 우려되는 바 적지 않다. 그 은감는 구라파 교계의 양상에서 짐작될 것이다. 공자의『無遠廬면 必有近憂』라는 말과도 같이 우리는 항상 앞을 내다보고 미리미리 대처할 태도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교황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의 영명하신 판단에 우리는 다시 없이 열복하는 바이다.
우리는 미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약속한 교무금을 내고 고해성사 등의 규칙을 지키면 신자로서 급제한 것으로 믿어 왔다.
신부는 명령자로 신자는 순도자로서 청극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런 태도로는 노도와 같이 들이닥칠 세파의 독소와 대결할 수 없게 되어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제는 신부는 봉임자로서 신자는 신부의 협력자로서 적금적인 활동을 개시할 시대에 온 것이다.
세속에 대해서 신자는 잘 알고 있고 대처할 수법에서도 신부보다 몇 배 능란한 것임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세파 속에 부닥쳐 살아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신자 중에는 유능한 인사가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사기를 돋구어 일선에 내세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세속의 정화도 평신도의 소임으로 보아야 한다.
이 시대적인 격동에서 평신도는 초본당적 초교구적 국제적으로 유대와 협조를 강화하여 교회를 지키고 교세를 확양하고 천주의 나라를 이룩하도록 평신도의 사명감을 복들고 열성적인 활동전선으로 동원함이 곧 교회운영의 새로운 정신일 것이다. 성서의 기록된 바 사도 바오로를 돕던 옛날의 신자의 자세를 다시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평신도사 도직의 운동의 발전 과정에서 다소의 애로가 있다손 치더라도 발전 과정에서 으레 오는 진통이며 교황청 앞에서도 사제들의 데모가 있는 이때에 굵은 신경으로 대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속담에『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잡지 마라』는 말은 일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대국을 위하여 우리는 서로 너그러운 도량의 소지자로서 만사를 원만히 다루는 수양을 쌓으면 한다.
끝으로 평신도 사도직 중앙협의회 총재 황 주교님과 동협의회의 간부 제위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올리며 아울러 평신도 사도직이 률령대로 성과를 거두기를 기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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