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새해가 밝아올 때 긴 한해를 설계하면서 좀 더 뜻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며 연중행사의 다채로운 계획을 꾸미게 된다. 그런데 한 해가 저물 무렵인 이즈음엔 마을의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마음으로 불안해지는 수가 많다. 누구나 자신의 내적 외적인 생활 태도가 좀 더 넓고 깊고 높고 아름답게 엮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히 소망하면서 생활해 왔지만 이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카렌다가 펄럭일 때 그것은 많은 상념을 낳게 되는 것이다. 5월, 어느 푸른 나무잎 새로 밝은 하늘이 보이고 장미 향기 그윽한 밤에 우리는 성모님을 찬양하는 촛불 행렬로 아름답고 좋은 시절을 더욱 뜻있게 꾸몄었지만 이제 11일의 낙엽엔 신록의 꿈은 찾아볼 수 없고 다만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와 함께 영생하는 다소곳한 모습을 볼 밖에.우리 교회에서 11월에「죽은 이들을 생각하는 달」로 행사를 갖는 것은 매우 의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준주성범」에『마음에 마땅한 자리를 예비할 것』영원한 진리이신 그리스도를『맞아들일 자리를 만들고 다른 모든 것이 들어오기를 허락하지 말 것』이라고 했듯이 우리의 생활은 언제나 사색과 찬양으로 맺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만능시대에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오늘의 향락을 위해 예비하지 않은 상태로 방황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감감해 견디기가 어렵다. 오늘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 찬란한 햇빛이 영원한 것인 양 자신의 젊음과 재력과 권세를 남용해 버리고 파멸하는 예를 흔히 본다. 그들에게는 5월의 신록이나 8월의 짙푸른 녹음이 영원할 것 같은 착각, 그것은 정녕코 어처구니 없는 착각이겠지만 속에서 세월을 허송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죽음, 그것은 우리들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하나의 관문이다. 이 엄숙한 관문을 좀 더 떳떳한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맞이하기 위해 평소에 착실한 태도로 뜻있는 삶을 영위해 나아가야겠다. 우리가 살아갈 때 천주님의 도우심으로 자비로운 너그러움으로 영혼을 항상 깨끗이 부활시켜야지 만약 더럽혀진 채로의 영혼이 이 관문을 향했을 때 그것은 영원한 멸망이며 파괴상태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현세에 있어서 파괴된 악마적 세력에 절망적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긴 사람은 희망도 평안도 또 영생도 영원히 찾을 길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처절한 불행을 원치 않는다.
마음의 평화와 안일로 아름다운 낙원에서 오래도록 노래하며 춤추며 기쁘게 사는 이상향을 지향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끊임없이 용서를 빌면서 살아가야겠다. 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 긴 세월의 연속 안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나는 영광과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은 얼마나 다행한 노릇인가. 11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서 많은 기구를 바쳐 주고 우리들 자신의 영생으로 향한 기름 등을 언제나 잘 손질해서 대비해 놓자. 신랑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죽은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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