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단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없습니다. 나는 체포되거나 유형된 적도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당했던 재앙을 감수하지도 못했습니다. 나는 다만 여러분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폴란드 출신으로 미국「필라델피아」의 대주교인 크롤 추기경이 꼴베 신부의 시복 1주년 기념미사를 주례하면서 감격적인 강론을 했다.▲꼴베 신부 추도미사는 독일 나찌정권 때 4백만 명이 무고하게 생명을 잃어야 했던「아우쉬비쯔」집단 수용소에서 집전되었다. 이 미사에는 폴란드의 비진스키 추기경과 카롤 보칠라 추기경, 미국의 존 라이트 추기경이 참여했으며 최소한 15만 명의 신자들이 운집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꼴베 신부의 대리죽음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당년 69세의 백발 노인 가조니체크가「생명의 선물」에 감사의 뜻을 표명함으로써 그날의 감동을 되살렸다. ▲189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꼴베 신부는 1930년부터 6년간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꼴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 일본관구를 설립했다.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른 수사들과 함께「암테스」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3개월 만에 석방됐고 1941년 5월에 다시 체포되어「아우쉬비쯔」죽음의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수감자 1명이 탈출하면 연대책임을 물어 수감자 10명에게 아사형이 언도됐다. 이 같은 수용소 벌칙에 따라 가족을 거느리고 있는 가조니체크가 연대책임을 져야 하는 그 10명 중에 끼어들게 되자 꼴베 신부가 그를 대신하여 죽음을 자원했다. 꼴베 신부는 9명의 동료와 함께 아사감방에 갇혔다가 그가 그렇게도 공경하던 성모님의 승천축일을 하루 앞둔 1941년 8월 14일 독살 주사를 맞았다.▲이웃을 위하여 자기의 귀중한 목숨을 바친 꼴베 신부의 큰 사랑은 당대와 후세의 귀감이요 위로이며 희망이다. 지난 1966년 폴란드 포교 1천 주년 기념행사 때 폴란드의 공산정부는 교황 바오로 6세와 크롤 추기경의 참석을 허가하지 않았으나 이번 꼴베 신부의 시복 1주년 기념행사에는 크롤 추기경의 입국을 환영했다. 이 같은 조치는「로마」와 폴란드 정부 간의 해방의 신호 같은 느낌이 들지만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살신성인한 꼴베 신부의 음덕이 크게 작용됐을 것이다. ▲이날 비진스키 추기경은 이렇게 강론했다.『한때는 전기로 충전되었던 가시 철망들이 지금은 녹슬어 버렸고 막사들은 땅 속에 파묻혔으며 화장터들도 타 버렸습니다. 여기 이 땅에 남은 것은 생명과 부활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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