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기대 가운데 제2차「바티깐」공의회가 개회된 후 10년이 경과하였고 공의회가 폐회된 지도 7년이나 되었다.
공의회를 진행하가던 3년 수 개월 동안에 교회가 체험한 것은 과거 3세기 간의 체험에 필적할 만한 거대한 것이었다. 과연 이번 공의회는 앞으로 상당 기간에 거쳐서 교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고 볼 수 있고 또 이 방향으로 가톨릭교회는 쇄신을 추구하고 있다. 그동안 비교적 짧은 기간이지만 교회는 괄목할 만한 변모를 가져 왔고 일부에서는 너무나 엄청난 급격한 변화 앞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운 면을 노정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교회의 자세가 어제의 그것일 수는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공감하고 있다.
피동적이기는 하지만 한국 교회도 공의회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쇄신 과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러한 쇄신의 노력은 한국 교회의 일부층에서는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 교회 전체를 고려할 때에는 너무나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복음정신에로 돌아가자는 공의회의 기본 이념이 교회 전체에 침투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렵고 따라서 문제의식이 전반적으로 희박한 듯하다. 다행하게도 한국 교회에는 극단적인 보수 세력은 희소하여 비교적 시대의 요청에 잘 순응하고 있지만 그 대신 투철한 문제의식과 뚜렷한 방향감각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은 많지 않다.
공의회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시도했기 때문에 그동안 많은 실험 과정을 거치고 있고, 제도면에서나 생활면에서 뚜렷한 표준이 서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에 처하여 일반 신자들뿐 아니라 사목자들의 상당한 부분이 지금을 과도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기대하는 멀지 않아서 교회법도 개정작업이 끝나고 전례 개혁도 일단락을 지우고 제도나 규률이 명시되면 그때부터 본격적이고 정상적인 사목활동이나 신앙생활을 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물론 제도적인 면에서는 이 시기를 과도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근본을 보자면 이러한 대기상태는 좋은 상태가 아니다. 인간의 개별적인 특수활동에 있어서는 과도기도 있고 정립기도 있지만 인간의 생활 자체는 과도기라는 것을 용납하지 아니 한다.
싫건 좋건 우리는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가야만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당신의 설교가 희랍인의 지혜도 아니고 유태인의 율법도 아니고『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어리석은 기쁜 소식』이라 하였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속의 눈에 어리석은것으로 보이는것은 예나지금이나 다름없다.교회가 아무리 시대를 이해하고 시
대에 적용한다.할지라도「어리석은 기쁜 소식」을「지혜로운 슬픈 소식」으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 교회의 쇄신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민주화, 사목의 현대화, 재정의 합리화를 부르짖지만 모든 교인의 그리스도화 없이 교회의 쇄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의회 개막 1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의 모든 구성원은 각자의 그리스도화가 어느 정도에 이르고 있는지 반성해야 되겠다. 성직자들은 교육자나 교회 관리인이 되기 전에 먼저 참다운 사제인가,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목자인가 아니면 독신제도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에 바쳤다는 핑계로 교회와 신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누를 끼치는 바리사이가 아닌가를 깊히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평신자들은 자기 한 사람의 수계로 만족하고 안일무사주의에 빠지거나, 사도직을 한답시고 소리나는 꽹과리나 요란한 나팔수가 되지 아니 했는가 신자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교회를 이루는 필요불가결의 요소임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수도자들도 교회사업을 위한 기술자나 관리자이기 전에 삼대서원의 실천을 통한 하느님의 나라의 증인의 임무를 다하고 있는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참여하기는 싫어하면서 그의 부활의 영광에만 참여하지나 아니 했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할 일이다. 세상은 점점 더 속화의 길로 치닫고 있지만 교회마저 기술적인 것과 방법적인 것에 매달리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앙의 문제요 영성의 문제요 자의식의 문제이다. 다시 한 번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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