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해마다 그리스도의 일생과 력사 안에 참여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교회의 자녀들에게 생활로써 체험하도록 자애롭게 전례주년을 설정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바이다.
바로 그 전례주년의 마지막 날에 우리는「그리스도왕」축일을 성대히 지낸다.
그리스도는 진정 왕이시다. 그것은 교회의 종말론적 관점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마땅한 일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그리스도가 왕이시라는 의미는 우리가 흔히 세속적인 뜻에서의 통치적 압제적인 군주를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봉사 그리고 정의와 평화, 행복과 기쁨을 이 세상에 충만케 하시는 자애의 봉사적 권위를 가지신 왕이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왕 축일의 유래 자체가 그러하다. 즉 1952년 이 축일이 제정되던 당시의 세계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전제주의적 절대적 군주제도가 횡행하고 있었으며 왕은 국가 위에 절대자로 군림하여 어떠한 행패도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심지어는 그 왕들은 유일한 최고자 혹은「주인」으로서 갖은 권력과 사치를 다하는 전제를 제멋대로 행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 권력은 급기야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권위마저도 부정하고 군주 스스로가 그 권좌 위에 올라앉는 무엄하기 짝이 없는 잠월행위까지 자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절대군주로서의 군주은 자신의 행패를 위해 국민의 자유는 물론 인간의 존엄성마저 짓밟고 개개인의 량심마저 부정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 잔재는 지금도 공산국가들에서 볼 수 있으니 즉 개인은 오직 단체ㆍ국가에 예속된 하나의 기계 또는 도구로밖엔 인정 받지 못하고 있다.
현금의 공산국가들이 그러하듯이 그 옛날의 군주제도하에서의 세계에서 보다 가공할 일로서는 군주이 하느님을 대신해서 권력을 독차지하고 아예 하느님의 존재마저도 부인했다는 점이다. 즉 각국의 군주들은 스스로가 하느님이 되어 하느님의 권위를 탈취한 것처럼 행동했었다.
그래서 당시의 교황 삐오 12세께서는 하느님의 엄위하심과 우리 주 그리스도의 봉사적 사랑의 절대적 통치권을 온 세계에 재인식케 하기 위한 선언으로서 이「그리스도왕」축일을 엄숙히 제정 공포했던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인간은 누구나가 하느님의 모상따라 창조된 존엄성을 가지며 양심의 자유와 그 개개인의 양심을 보다 더 신장시켜 나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온 인류에게 국가에 봉사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그 국가보다 위에 지고하고 위대한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명시했던 것이다.
진정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독생성자로서 전 인류를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지존하신 분이시다. 그분은 그렇게까지 당신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생명까지도 그 백성을 위해 기꺼이 바치셨던 것이다.
이 세상의 어느 군왕이 그들의 국민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 같이 내던진 자가 있었던가? 아니 우리는 그리스도왕을 이 세상의 세속적인 군왕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하나의 망발일지 모른다. 그 이유는「그리스도왕」축일의 복음서에서 사도 요한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는 데서 유래한다. 빌라도가 재삼 예수께 묻기를『그대가 왕인가?』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당신이 말하는 대로 나는 왕입니다』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어『내가 태어나 세상에 온 것은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서이니 진리를 위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말을 듣습니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은 인간이 진리를 터득하도록 하기 위하심이었다.
또 예수께서는 바로 그 직전에『내 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아닙니다』하고 분명히 말씀하심으로써 이 사실을 더욱 뒷받침하셨다. 그러기에 공의회에서도『교회는 결코 현세적 야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교회의 소망은 성신의 인도로 그리스도 자신이 하시던 일을 계속하려는 것 한 가지뿐이다. 진리를 증거하고 판단하기보다는 구원하며 봉사를 받기보다는 봉사하러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 하려는 것뿐이다』 (사목헌장 3장)
그리고 복음사가 마르꼬와 마테오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당신들도 아시다시피 이방인들의 집권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권력으로 내리누릅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당신들 중에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합닌다』(마르 10ㆍ42~45 마테 20ㆍ25~28)
이상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의 왕권은 봉사인 동시에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이 세상의 전체적인 흐름의 통치권이요 종말의 그날에 있을 영광의 그것이다. 『인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큰 권능을 떨치며 영광스러이 내려옴을 보게 될 것이다.』 (마테오 24ㆍ30) 우리는 그리스도왕의 재림의 그날까지 주의 죽으심을 전하고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으며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이 세상에 봉사하는 자이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계속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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